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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여년 전, 아버지께서 쓰시던 삼성 센스 노트북이 있었다. 당시 조립식 펜티엄2 400MHz 컴퓨터를 쓰고 있었던 내게 그 노트북은 상표명에 걸맞게 사이즈가 '센스' 그 자체였다. 그 당시에는 그리 흔치만은 않았던 노트북이라는 존재가 우리 집에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설악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차 안에서도 동생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피파2000을 위시한 각종 게임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심지어 사진첩 폴더를 찾아 이렇게 아래에 사진까지 첨부해 본다.
[2002년 여름, 설악산 근처 숙소에서 찍었던 사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 동생은 현재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 사진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때 했던 게임은 동생의 의지였다면 피파2000, 둘이 함께할 게임이라면 오락실 대전 게임들, 나의 의지였다면 삼국지였을 것이다. 분명 이 노트북의 본래 목적은 아버지의 업무용이었지만, 어린 나이에만 이 노트북을 접해봤던 나로서는 떠오르는 기억이 그저 게임 뿐이다.
원체 게임을 잘 못하는 나는 직접 게임을 하는 것보다 동생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솔직히 말하면 게임하는 사람 귀찮게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종의 게임 관음증(?) 같은게 있었다. 게임을 입으로 한다는 소리가 바로 내게 해당되는 소리겠거니.. 내가 한참 게임을 좋아하던 초~중학교 시절에는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 그리 흔치 않았다. 여러명이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은 고사하고, 둘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해 봐야 애뮬레이터로 플레이 하는 오락실 게임이 아니라면 대체로 전략이나 RPG 게임 등을 주로 했기 때문에 둘이서 게임을 한다고 해도 한 명은 지켜보거나, 턴 방식으로 번갈아 해야 하는 난제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동생과 내게도 각각 노트북이 생겼고, 차차 우리가 처음 만져보았던 이 노트북에 대한 기억은 잊혀져 가기에 이른다. 아버지께서 회사로 들고 간 이 노트북은 이후 다시 우리집에서 목격할 수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부품이 외장인 이 노트북은 외장 시디롬과 외장 플로피디스크, 심지어 외장 랜카드에다가, USB마저도 착탈식 아답터를 끼워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노트북 본체의 비약적인 경량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였으므로 '외장화'도 나름 혁명적인 것이었다. 플로피디스크가 사양화되고 시디롬도 없이 출시되는 요즘 노트북들을 떠올리면 이게 바로 격세지감인가 싶다. 하지만 366MHz의 펜티엄2 프로세서, 64MB 램, 6GB의 하드는 당시에는 꽤 괜찮은 사양이었다.
아버지 회사 창고 어디에선가 먼지를 가득 덮어썼을 이 노트북은 어느날 갑자기 내게로 돌아왔다. 회사에서도 이미 수년 전에 퇴역한 이 노트북을 다시 받아든 감정은 자못 감개무량(?)했다. 한글 워디안과 오피스97이 업무용 노트북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듯 했으나, 여전히 바탕화면에 떡하니 걸려있는 피파2000과 GTA2 아이콘이 나를 추억으로 이끌었다.
[피파 2000 : 선수 얼굴이 클로즈업 될때마다 당시의 3D 그래픽을 실감한다]
윈도우3.1과 도스를 병행 사용했던 486DX2 시대를 지나 우리집의 컴퓨터 혁명(?) 주기는 점차 짧아져 갔다. 486 이후 바로 펜티엄2로 건너뛰고, 그 이후 펜티엄3를 지나 애슬론, 그리고 현재는 동생이 군대 가면서 맡긴 듀얼코어 컴퓨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에 담겨있는 이 노트북은 바로 우리집 컴퓨터 혁명의 2세대와 3세대 사이에 걸쳐 존재했던 노트북이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회사 업무용으로 사용하셨던 터라, 이 노트북이 우리 형제의 손에 의해 유린당한(?) 적도 상대적으로 적은, 나름 순정판(?) 컴퓨터였다. 몇 개의 게임을 설치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그 흔한 백신이나 곰플레이어 따위도 깔지 않은 채 이렇게 깨끗하게 윈도우98+한글+오피스+서너개의 게임 만으로 강산이 변할 동안 변화 없이 관리(라고 쓰고 '방치'라고 읽는다)되어 온 컴퓨터가 어디 흔하겠는가! 액정 백라이트 한번 갈지 않고도 이렇게 선명한(??) 화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세월은 나를 구식으로 만들었지만, 나는 아직 팔딱팔딱 신선합니다' 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마침 외출을 나온 동생, 그는 GTA2를 선택했다]
여담이지만, 첫 번째 사진과 네 번째 사진의 등장인물은 같다. 등장하는 노트북은 그대로인데, 다루는 사람은 어린이의 태를 벗고 어른이 되어 있다. 두 사진 모두 모자이크 처리한 까닭은 개인의 신상 보호 목적도 있지만 그의 늙어감을 굳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었던 혈육의 자비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동생이 외출을 나왔던 어제는 중고나라에서 이 노트북이 팔린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노트북은 저 사진에 찍힌 이후 약 반나절 뒤 구매자의 손에 인계되었다. 운 좋게도 동생은 적절한 시기에 외출을 나온 덕에 판매 직전의 노트북을 만져 볼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다. 엄밀히 말하면 GTA2를 마지막으로 플레이해 볼 기회이려나.. 어제 밤 10시, 중고나라를 통해 연결된 구매자와 00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약간의 바람은 늦은 밤의 스산함을 더욱 더 부각시켰다. 그 와중에 시커먼 패딩을 입은 나는 기밀 정보가 담긴 듯한 각진 시커먼 가방을 들고 어둠을 헤치며 00역으로 찾아갔다. 00역의 한 구석에서 전원 콘센트를 발견한 나는 그 곳에 서서 한 손에는 돈이 가득 든 것처럼 생긴 골동품 노트북 가방을 들고 또 한 쪽 손으로는 접선자와의 연락을 위해 핸드폰을 쥐고서는 연신 두리번 거리며 구매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역무원이나 경찰관이 지나칠 때 왠지모를 스릴감을 느꼈던 건 왜일까. 복장이나 가방이나 참 분위기나 기분을 묘하게 했다. (이거 돈가방 아니예요~ 무기 안들어있어요~ 공작원돋네ㅋㅋ 요러고-_-.....)
모자를 눌러쓴 구매자는 정확한 시간에 접선지에 나타났다. 골동품 노트북 답게 배터리의 수명이 10여 초에 불과했으므로 나는 역사 안의 전원을 활용하기로 하고 능숙한 솜씨로 노트북을 꺼내고 신속히 조립을 했다. 인적이 뜸한 넓은 00역 한 구석에 시커먼 남자 둘이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노트북을 내려놓고는 말도 없이 그저 느린 부팅에 초조해 하고 있는 꼴이 자못 우스웠다. 몇 가지 확인을 시켜주고 외장 시디롬을 구동해본 뒤 다시 신속히 노트북을 해체하고 가방에 담았다. 오른손으로 남자에게 가방을 건네는 순간 만큼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바로 1초 뒤 왼손으로 만원짜리 두장을 받는 장면에서 바로 장사꾼st.로 전락하지만 말이다. 단돈 2만원에 팔려버린 추억을 뒤로하고, 마치 폭탄이 담긴 가방을 건넨 마냥 점차로 걸음을 빨리 해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몇 만원만 더 투자하면 쓸만한 중고 노트북을 구입할 수 있을텐데 굳이 이 구시대의 유물을 구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매자의 구입 의도가 몹시 궁금해져 한참 동안 주머니 속 그가 건넨 이만원을 만지작 거렸다. 그에게는 2만원짜리 골동품 게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추억으로 들어가는 매개물을 단돈 2만원과 바꾼 셈이다. 글을 쓰다보니 왠지 손해본 기분이다-_-.. 쳇
달리기는 입학할 때 386이 최신이었닥 486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군대를 가니, 어느덧 전역할 무렵에는 펜티엄이라는 개념이 나오고는 컴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하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근근히 사용할 따름입니다. ㅎㅎㅎ
우리 집은 예전 노트북을 아기용으로 그냥 사용하는데, 그냥 좋아라 합니다. 칼라라... 그러다 지치면, 뽀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