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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장마라서 우산을 쓰고 다녔지만, 지금은 뜨거운 햇살을 견딜 수가 없어서 우산을 쓰고 다닌다. 그냥 햇살을 쬐기엔 얼굴이 박설레임처럼 타버릴까봐 걱정되고, 그렇다고 양산을 들고다니는건 실용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절충안으로 오늘도 우산을 꺼내들었다.
[흑인이 되어버린 박설레임(24)]
여자친구가 가족여행을 떠난 사이, 나는 좌철과 함께 토익공부를 빙자한 도서관 바캉스를 즐기고 있다. 그녀를 만날때 입었던 긴바지와 신발은 잠시 집에 모셔두고, 검은색 우산을 양산 대용으로 쓴 채, 반바지를 입고 조리를 신었다.
[신발만 조리로 바꾸면 딱 이 차림이다]
30도를 넘나드는 집에서 벗어나, 시종일관 24도를 유지하는 도서관의 청량함을 만끽하는 것은 어쩌면 공부를 빙자한 유쾌한 일탈인지도 모른다. 시험기간에는 노는 것이 일탈이지만, 학점 다 따놓고 휴학까지 하는 마당에,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출근해 하루종일 도서관의 저온현상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건, 이 또한 기막힌 일탈이 아닐 수 없다.
좌철과 나는 노트북을 가져오는 고로, 늘 2열람실이다. 내 도서관 좌석은 암묵적인 지정석이 있다. 1열람실은 121번, 2열람실은 97번, 6열람실은 25번. 좀 오덕후같지만 신입생때부터 지금까지 늘 이 자리들을 고수했다. 이 자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열람실 문과 너무 가깝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전화가 올 경우 휴대폰 진동이 4회 이상 울리기 전에 열람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을 수 있을만큼 접근성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아 정말 오덕후같다ㅠ)
방중 토익수업도 마침 어제를 끝으로 종강했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뜨거운 집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시원한 도서관 2열람실로 찾아들었다. 그리고 3시가 될 때까지 HTS를 켜고 주식을 보았다. 시세창을 보면서 간간히 알트탭을 눌러 주식사이트의 현재성에 충실한 글들을 읽는건 열람실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도서관 휴게실에서 2인용 대전게임을 했다]
3시, 미련없이 HTS를 끄고, 토익LC를 시작했다. 물론 노트북화면이 눈앞에 있으니 자꾸만 딴짓을 하게 되어 효율이 높지는 않지만, 어쨌든 귀에서는 솰라솰라블라블라 영어가 연주되었다.
그제, 어제와 마찬가지로 5시가 되자 좌철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른 저녁을 먹는 까닭은, 점심도 이르게 먹었기 때문이다. 좌철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열람실을 나서는데 마침 도서관으로 출근했던 의악이 우리를 맞이했다.
[의악(25)의 습격]
그동안 서로 쌓인게 많았던 좌철과 의악은 눈이 맞는 순간 불똥이 튀었다. (이와 관련한 기사는 이후에 <좌철세가>와 <의악세가>에서 보다 면밀히 다루도록 하겠다) 둘 중에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한 의악은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며 좌철의 목에 팔을 둘렀다. 2010년 전반기를 뜨겁게 불태웠던 좌우합작이 방학을 전후해 급작스럽게 붕괴된 것에 대해 분노했던 의악의 일방적인 선전포고였다. 좌철(좌파) VS 의악(우파), 본격적인 좌우대전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좌우대전의 발발]
도서관 현관 앞에서 좌철과 의악은 본격적인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와 오일이의 싸이 사진첩에서 시작된 바 있는 찌글찌글한 설전에서부터, 그간 쌓였던 그들 둘의 온갖 케케묵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5시 경부터 시작한 그들의 설전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한참 전부터 배가 고팠던 나는, 5시 20분이 넘어가자 슬슬 위장에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설전을 뒤로하고 조만식기념관 방면으로 후퇴해 화단에 걸터앉아 멀찌감치 그들을 지켜보았다. 도서관 주변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짧게나마 시선을 돌리는 등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사실 3초 이상 지켜볼만큼 대단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쟤들 뭐야? -> 끝)
[화단에서 바라본 좌우대전]
좌철이 아무리 공격적인 스타일이라고 해도 조근조근 나긋나긋 구렁이 담넘듯이 모든 공격루트를 봉쇄하고 시종일관 타협으로 몰아넣으려는 의악의 논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타협을 원하는 그의 목소리는 일정하면서도 마치 불경을 외는 듯해 한순간에 고막의 순결을 빼앗았다.
중간중간 그들의 대화국면이 긴장과 갈등을 지나 타협의 냄새가 나는가 싶어 근처로 찾아가기도 했던 나는, 그들이 아직도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음을 알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가 배고프니까 그만 하자고 했다가, 지쳐 돌아와 화단에 걸터앉아 학교 풍경을 바라보며 피로와 시장함을 달랬다.
그리고 5시 45분 경, 다시 그들 곁으로 찾아가니 이제서야 서로 모든 이야기를 매듭짓고 화해와 타협을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라 배가 고팠던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화합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수고했어 (짝짝짝) 빨리 밥먹으러가자 나 배고파!!'
[다음부터는 대전게임으로 다투기 바라며 (자료제공: 좌철넷북)]
'우리 06동기 중에 스물다섯 먹은 노인네들이 몇명이나 있는가' 하며 화해무드를 리드하는 의악의 물음에, 좌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꽁꽁 얼어붙었던 좌우 냉전이 바야흐로 해빙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화해무드로 전환하며 뜨거운 포옹을 마지막으로 도서관 현관 봉쇄를 풀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해졌다. 다시한번 좌우합작이 결성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숭실의 재야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두고 '7월합작', 또는 '7월 좌우 대타협' 이라 명명했다.
뭐함
뭐함
뭐함
뭐함
뭐함
뭐함
뭐함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 힘들다 간다 안 간다를 외치는 사람....
정말 알 수 없는 기다림...
이건 타협이 아니라, 한 쪽의 훈수같은 분위기......
방학 때는 뭔가 색다른 것을 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