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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받은 포상외박. 국기게양식때 대대장은 표창장을 수여하면서 내게 포상휴가로 바꿔주겠다고 공언했다. 태옥이와 휴가를 맞추기로 마음먹은 나는 포상휴가를 주겠다는 대대장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외박을 올리기로 했다. 8월 7~9일 그와 함께하는 캐리비안베이에 적잖이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입장권까지 무료라는데!
포상휴가가 8월달에 나오니까 외박은 올리지 않는게 좋겠다는 대영이의 권고에 나는 잠시 갈등했지만, 그래도 2박3일보다야 당연히 4박5일이었기에 포상휴가를 받기로 결정, 외박을 취소했다.
8월에 나온다는 포상휴가는,아주 상투적인 '대대에 포상증이 없다' 는 핑계로 준다/안준다 소리만 10여차례 이상 반복된 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왔다! 그러나 하루 깎인 3박4일로. 외박보다 하루 더해서 나가는 것밖에 안되는데, 이미 그와의 휴가일정이 뒤틀려버린 터라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외박은 취소한 상태였고, 휴가는 2주전에 올려야만 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이 태옥이를 캐리비안베이로 보내버리고 나는 21~24일 휴가를 계획했다.
'금일부로 화수목 복귀만 가능합니다'
휴가에 관해서 우리만큼 휴가증 짜고 휴가규정 많은 부대도 없을거다. 1,2,3차 안전교육을 패스하고(카트 면허도 아니고-_-) 복귀날짜도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맘먹은대로 휴가 출발을 원천 봉쇄한다. 설상가상으로 정기는 아예 보급관 마음대로 날짜가 결정된다. 병장정기도 병장 달고 즉시 나간다. (난 9월 병장인데 9월1일부터 정기라니-_-) 군부대 특성상 끝없이 지시는 내려오고 하급부대에서는 그에 따라야 하니까 탁상행정이 반복되는거지만 참..
그래서 17~20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17일이 독후감 제출일이라 좀 걸렸지만 정훈장교에게 미리 말해 문제도 해결해 두었다.
신종플루가 우리 연대에서도 발생했다.
바로 신종플루 관련 공문이 마구 쏟아져 내려오고 휴가와 면회가 일절 금지됐다. 심지어 부대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까지 해야했다! 물론 이때 사지방과 PX, 휴게실 등 모든 편의시설이 통제되었다. 물론 내 휴가도 꼬여버렸다. 연대에서 내려온 지침으로는 월요일 출발만 가능하단다. 그렇다고 정기보다 늦게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주 늦춰서 24~27일로 포상을 늦추기로 마음먹었다.
양왕에게 말해서 24일에 포상을 나가는걸로 합의하고 중대장과 보급관의 승인을 받았다. 그때 출타복귀 이후 일주일동안 격리된다는 지침이 새로 내려왔다. 보급관은 처음엔 승인해 놓고는 일주일 격리 지침을 알고는 갑자기 안된단다. 27일에 복귀하고 4일간만 격리되었다가 바로 다시 정기휴가를 나갈 수는 없다는게 그 이유였다.
휴가관련 규정도 아니고 고작 격리규정 때문에 안된다니. 격리되서 방치되느니 밖에 나가서 쉬고 오는게 낫지 않나? 하지만 보급관은 본래 일체의 논쟁이 원천봉쇄된 사람이다. 그는 막무가내로 정기를 미루라며 8월 24일 포상과 9월 21일 정기를 확정지었다. 재준이와 휴가를 맞춰놓은 상태였기에 매우 꿀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연대에서 지침이 또 내려왔다. 출타복귀 격리를 48시간으로 줄이고 어제까지 월요일 출발이었으면 이제부터는 금요일 복귀만 가능한 것으로-_-.. 어차피 바뀔 거였으면 어제는 그냥 가만히 있을걸 싶었다.
짱구를 굴려보니 금요일로 복귀를 맞추면 8월 25~28일 포상, 격리 48시간 채우고, 9월 3~11일 정기를 가고도 규정상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3~10일에 재준이 휴가가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천우신조로 여긴 나는 중대장에게 서둘러 승인을 받고 바로 보급관에게 달려갔다.
끊임없는 갈굼과 짜증이 행정반을 가득 메웠다. 규정상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이번엔 복귀하자마자 또 휴가를 나가냐는게 그 논지였다. 27일에 복귀해 1일에 나가는것보다 오히려 28일에 복귀해 3일에 나가는게 더 늘어난 셈이었지만, 그때는 격리규정때문에 안되고 이번엔 휴가일정이 가까워서 안된다니.
그는 나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작정한 듯했다. 군대는 너희가 하자는대로 다 들어주는 곳이 아니라며 한동안 짜증을 내던 그는 9월에 포상을 나가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떨떠름했지만 이미 그의 갈굼에 넋이 나가있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9월 중순에 복귀해서 말에 바로 나가는 것이나 8월말에 나가고 9월초에 나가는거나 거기서 거기 같은데 보급관의 표정은 더없이 완고했다.
딱히 좋을건 없었지만, 포상을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겨우 맞춘 재준이와의 정기를 늦출 수도 없었다. 포상을 미루면 잘리기 쉬운 문제도 있고 원칙상 한달에 한번 출타만 가능해서 다시 짜증스러운 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게다가 9월말에 분파도 예정되어있고 독후감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이건 결국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미래를 고려하면 최악의 선택일수도 있다. 그렇게 한없이 갈팡질팡 하다가 정기는 결국 3일에 확정되고 포상을 9월의 끝으로 미루게 되었다.
하여간 그간 신종플루때문에 모든 부대 행정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휴가 지침도 매일 바뀌고 인사계는 그에따라 휴가자 100여명을 3번이나 재수정 했단다. 이 중에서도 오직 어머니의 기도만이 홀로 빛났다. 이 난항 중에서도 재준이와의 휴가가 딱 맞게 떨어지게 되다니! 게다가 외할아버지 구순잔치도 휴가 중에 들어와 있으니 오랜만에 외가 사람들도 찾아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포상을 9월 말의 어디쯤에 배치하느냐가 또 문제가 되는데, 22일로 설정할 경우 최상의 선택으로, 복귀 이후 분파가 확정되면 바로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분파는 동수와 함께 가기로 파견부터 휴가까지 전부 맞춰놓은 상태기 때문에 이 또한 절실하다. 29일에 나가게 된다면 분파계획은 물건너가는게 되버리지만 보급관에게 그나마 욕을 덜 먹을 시나리오가 된다. 문제는 10월 2일까지 두달의 경계선에 있어 이후 휴가를 또 지휘관의 승인을 거쳐서 두번 나가는걸 허락받아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분파를 가든 가지 않든 22일로 날짜를 확정받고 티오가 넘쳐서 잘리는 일이 없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