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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zed under 리포트 공작소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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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만 읽고 쓰면 확실히 글 전개가 어색한것 같다. 그치? (윤치호 일기를 '안' 읽고..)
일제 말 친일파의 대부라 불리는 좌옹 윤치호, 그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자, 개화 자강운동의 대명사요, 일제시기 조선 기독교의 원로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한말 미국 등지에서 유학한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으로 독립협회, 대한자강회 회장 등을 지냈던 그가,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로 변절해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는 열쇠가 되어줄 <윤치호 일기>,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책의 두께가 마치 자기의 친일파적인 행동에 대한 항변의 양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친일에 대한 항변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윤치호의 소시민적인 관찰자세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60년을 기록해온 그의 고집과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한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일기만큼 사람의 속내를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저작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 엄청난 기간과 양의 일기를 쓴 친일파에게서 우리가 받을 인상은, 친구나 동생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얻은 재미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친일에 대한 변명이라 짐작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막상 읽어내려가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펜을 잡고 곧게 앉은 완고한 칠십노인의 풍모이다. 그러나 그의 펜에서 흘러나오는 글씨는 다름아닌 친일이다. 우리가 결코 닮거나 배우고 싶지 않은 친일의 이름, 그 이름을 써내려간 노인의 60년 고집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치호를 단순히 친일파로 기억하기엔 무리가 있다. 친일파의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기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이면을 냉정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조선인들의 민족성 개조가 독립운동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3.1운동이 순진한 민족주의자들의 무모한 행동이었으며, 땅을 팔아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것보다 일본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땅을 사들이는 것이 더 필요한 애국이었다. 차가운 현실주의자의 판단으로는 ‘약소민족이 강성한 민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자기보호를 위해 그들의 호감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 일기는 어느 역사서보다도 일제시대를 입체적으로 읽게 한다. 우리는 중일전쟁 발발 이전까지의 그가 조선과 일본에 대한 양비론의 자세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지식인 사회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윤치호, 그는 철저히 자기 주장에 따라 살아간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이자 소시민이다.
그는 일제의 조선인 차별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사실은 독자들은 알고 있는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국제 정세를 꿰뚫고 있었던 그는, 3.1 운동이 미국이나 연합국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을 예측했으며, 세계대전의 본질이 제국주의 전쟁임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끝내 친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시대의 압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악설과 적자생존을 신봉하는 그에게 서양이나 일본은 배워야 할 대상이었고, 조선은 가엾지만 나약하여 애증이 교차하는 그런 대상이었다. 독립 투쟁을 벌이는 애국자들을 오히려 민족에게 해가되는 몰지각한 인물, 또는 총구를 겨누고 운동 자금을 뜯어내는 노상강도로 인식하는 반면, 일본이 이룩한 업적과 이를 가능케 한 국민성에는 진심으로 탄복하는 그의 자세는, 일본이 조선을 놓아준다 하더라도 조선은 독립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예견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그에게 남은 선택은 일본에 협조하며 때가 될 때까지 실력을 키우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인이 차별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조선인 스스로가 일본인보다 더 충실한 일본인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시대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인 그가 어찌 그따위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의 사고방식은 조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아두는 것이 그의 사고방식이다. 아무리 조선에 대해 안타까움과 가여움을 느꼈다 할지라도, 그를 ‘애국자’ 라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시대의 지식인들, 이광수, 최남선 따위의 소위 잘나간다는 지식인들의 생각이 하나같이 윤치호와 같은 현실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통탄할 일이다. 그런 사고를 가진 자들의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해방되고, 그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은 식민지하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적으로 지도자 노릇을 했다. 뒤가 찜찜한 지도자들은 결코 그들 스스로를 처단하고 물러날 리 없다. 잘못된 지도자들의 아래의 대한민국이 벌써 반세기째다. 친일에 대한 연구는 과연 얼마나 이루어져 왔는가? 우리의 비난과 욕설만 가지고는 그들을 뿌리뽑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친일파에 대한 분석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친일행적은 예나 지금이나 청산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 친일활동과 시기에 따라 그룹화 할 필요가 있다. 윤치호는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나름대로의 애국자론을 폈다고 하지만, 결코 ‘애국자’ 라 할 수없는, 주관적 민족주의자에 불과한 것이다.
윤치호 일기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클 것이다. 그러나 친일에 대한 인식을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친일에 대한 대중들의 막연한 인식을 일깨워주는 발행 목적이 더욱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냉정한 역사인식이다. 역사는 냉정하다.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지만, 평가는 후대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막연히 ‘친일파는 나쁘다’ 고만 생각한다면 친일잔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친일파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대중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직도 친일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만 난무하는 시점에서 이런 책이 발간되어 대중들에게 읽히는 것은 퍽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독자들에게 윤치호에 대한 ‘비난’ 이 아닌, ‘비판’ 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길 기대해 본다.
일제 말 친일파의 대부라 불리는 좌옹 윤치호, 그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자, 개화 자강운동의 대명사요, 일제시기 조선 기독교의 원로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한말 미국 등지에서 유학한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으로 독립협회, 대한자강회 회장 등을 지냈던 그가, 중일전쟁 이후 친일파로 변절해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는 열쇠가 되어줄 <윤치호 일기>,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책의 두께가 마치 자기의 친일파적인 행동에 대한 항변의 양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친일에 대한 항변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윤치호의 소시민적인 관찰자세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60년을 기록해온 그의 고집과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한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일기만큼 사람의 속내를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저작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 엄청난 기간과 양의 일기를 쓴 친일파에게서 우리가 받을 인상은, 친구나 동생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얻은 재미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친일에 대한 변명이라 짐작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막상 읽어내려가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펜을 잡고 곧게 앉은 완고한 칠십노인의 풍모이다. 그러나 그의 펜에서 흘러나오는 글씨는 다름아닌 친일이다. 우리가 결코 닮거나 배우고 싶지 않은 친일의 이름, 그 이름을 써내려간 노인의 60년 고집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치호를 단순히 친일파로 기억하기엔 무리가 있다. 친일파의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기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이면을 냉정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조선인들의 민족성 개조가 독립운동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3.1운동이 순진한 민족주의자들의 무모한 행동이었으며, 땅을 팔아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것보다 일본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땅을 사들이는 것이 더 필요한 애국이었다. 차가운 현실주의자의 판단으로는 ‘약소민족이 강성한 민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자기보호를 위해 그들의 호감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 일기는 어느 역사서보다도 일제시대를 입체적으로 읽게 한다. 우리는 중일전쟁 발발 이전까지의 그가 조선과 일본에 대한 양비론의 자세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지식인 사회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윤치호, 그는 철저히 자기 주장에 따라 살아간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이자 소시민이다.
그는 일제의 조선인 차별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사실은 독자들은 알고 있는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국제 정세를 꿰뚫고 있었던 그는, 3.1 운동이 미국이나 연합국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을 예측했으며, 세계대전의 본질이 제국주의 전쟁임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끝내 친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시대의 압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악설과 적자생존을 신봉하는 그에게 서양이나 일본은 배워야 할 대상이었고, 조선은 가엾지만 나약하여 애증이 교차하는 그런 대상이었다. 독립 투쟁을 벌이는 애국자들을 오히려 민족에게 해가되는 몰지각한 인물, 또는 총구를 겨누고 운동 자금을 뜯어내는 노상강도로 인식하는 반면, 일본이 이룩한 업적과 이를 가능케 한 국민성에는 진심으로 탄복하는 그의 자세는, 일본이 조선을 놓아준다 하더라도 조선은 독립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예견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그에게 남은 선택은 일본에 협조하며 때가 될 때까지 실력을 키우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인이 차별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조선인 스스로가 일본인보다 더 충실한 일본인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시대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인 그가 어찌 그따위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의 사고방식은 조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아두는 것이 그의 사고방식이다. 아무리 조선에 대해 안타까움과 가여움을 느꼈다 할지라도, 그를 ‘애국자’ 라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시대의 지식인들, 이광수, 최남선 따위의 소위 잘나간다는 지식인들의 생각이 하나같이 윤치호와 같은 현실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통탄할 일이다. 그런 사고를 가진 자들의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해방되고, 그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은 식민지하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적으로 지도자 노릇을 했다. 뒤가 찜찜한 지도자들은 결코 그들 스스로를 처단하고 물러날 리 없다. 잘못된 지도자들의 아래의 대한민국이 벌써 반세기째다. 친일에 대한 연구는 과연 얼마나 이루어져 왔는가? 우리의 비난과 욕설만 가지고는 그들을 뿌리뽑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친일파에 대한 분석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친일행적은 예나 지금이나 청산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 친일활동과 시기에 따라 그룹화 할 필요가 있다. 윤치호는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나름대로의 애국자론을 폈다고 하지만, 결코 ‘애국자’ 라 할 수없는, 주관적 민족주의자에 불과한 것이다.
윤치호 일기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클 것이다. 그러나 친일에 대한 인식을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친일에 대한 대중들의 막연한 인식을 일깨워주는 발행 목적이 더욱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냉정한 역사인식이다. 역사는 냉정하다.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지만, 평가는 후대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막연히 ‘친일파는 나쁘다’ 고만 생각한다면 친일잔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친일파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대중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직도 친일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만 난무하는 시점에서 이런 책이 발간되어 대중들에게 읽히는 것은 퍽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독자들에게 윤치호에 대한 ‘비난’ 이 아닌, ‘비판’ 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