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려서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던 소년이 있었다. 악보 거치대가 시야에 들어오면 눈이 시리다며 불평하던 소년. 어릴적부터 나는 눈이 아파서 몹시 고생했다. 시력이나 안구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심지어는 병명조차 알수없는 이상한 고통에 시달린 것을 인식한지 벌써 15년째다.

무의식중에는 그러한 통증을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급속히 눈에 통증을 느끼게 되는데, 그를 두고 어떤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의사는 결막염이라고도 하고, 심지어는 신경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의사도 있었다.

이 통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몇가지 찾아내기는 했는데, 사실 모두 다 일시적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아픈걸 잊고 다른 데 신경이 집중한다던가, 독서에 집중하던가, 세수를 하던가, 손으로 눈을 완전히 가리거나, 아니면 일부를 가려서 초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20년동안 살아오면서 얻은 자질구레한 자구책들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세수하며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 습관으로 고통을 약간씩이나마 덜어오곤 했는데, 내 눈이 빛에 남보다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긴 한데 의학적으로 증명된게 없다.

나는 내 눈의 상태를 끊임없이 불평해 왔다. 이러한 시각적인 스트레스는 나의 정신상태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시력은 꽤 좋은 편이라는 것인데, 그러한 시력이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것은 심리적인 측면이 클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오늘은 강남 성모병원에 가서 나의 이러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의사의 답변은 내가 앞에서 언급한 3가지 의견(이상없음 or 결막염 or 신경/정신문제) 중 하나일 것이라는 것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의 예상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의사들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의사는 나의 눈 상태를 '결막염'이라고 진단하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동공을 마비시키는 약을 눈에 투여한 뒤, 동공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먼곳의 글씨는 또렷했으나, 내 무릎위에 놓인 신문은 더이상 읽을 수 없었다. 나의 눈은 일시적으로 원시안이 되었다. 멀리있는 사물 외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흐릿하게 윤곽만 잡히는 이 시야는 나를 몹시 혼란스럽게 했다. 며칠 남지 않은 시험 대비를 하고자 했으나,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사소한 것이었다. '눈이 아무리 아파도, 아예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는 것. 내 시야의 모든 것들이 선명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지금 이렇게 더듬거리며 엄청난 크기의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아 어림잡아 써 내려가는 나의 모습이 몹시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의 내 눈은 역설적이게도 몹시 편하다. 가까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사물을 통해 들어오는 시린 영상이 담기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의사는 결막염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나는 이제 병명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성심껏 진료해준 의사에게 인사하고 병원을 나왔다. 풀린 동공은 내일까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개구리알처럼 변한 동공이 우습다. 동공이 풀리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근시보다도 더 불편한 것이 원시인지도 모른다. 당장 내 눈 앞의 글씨가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오감 중에 시력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오늘의 이 불편함을 잊지말고, 항상 나의 맑은 눈과 시력에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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