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군생활 중 짱박혀서 조금이라도 일을 쉬고싶은 욕망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전 대대원을 상대로 하는 취사병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짱박히고자 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큰 집단인데, 다행히도 취사장은 대대 건물과 따로 떨어져 있어 어느 인원보다 짱박히기가 용이해 고참들은 적절히 '행방불명' 되기 일쑤였다.

군생활을 오래 할수록 다양한 적절히 짱박히고자 하는 아이큐가 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짬이 될수록 그들의 소재를 찾기가 어려워지며, 실제로 기상천외한 곳에 숨어있거나, '등잔밑이 어둡다' 는 전략으로, 아동들을 당혹케 하곤 했는데..

2. 짱박힘의 전당

취사장의 대표적인 짱박힘 전당으로는 쌀창고, 계단창고, LPG창고, 건조고창고, 1종창고가 있는데, 편의상 쌀창/계창/엘창/건창/1종 으로 명명하겠다.

1) 연대전술과 쌀창

지옥의 연대전술은 사지방에서 연대전술사 편찬을 기록할 기회마저 박탈하고 그 방대한 스케일로 감히 서술할 마음이 내키지 않게 했는데, 그 지옥의 훈련 동안 1000인분이 넘는 식사를 감당하고 연대 예하의 수없이 많은 부대들의 쪼잘조잘한 추진을 해결했으며, 매일같이 간부식당에는 스타가 입성하고, 마지막 날에는 심지어 취사장 뒷편엔 사단장 체어맨, 연병장엔 군단장 헬기까지 굴러들고 날아드는 초유의 비상사태로, 휴식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연대전술을 하는 동안 마대진지를 쌓는 모양으로 쌀을 재배치하고, 전방엔 취사병들 군장과 더블백, 마대 뒤엔 모포로 만든 임시막사(?)를 만들고 그 뒤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그 은엄폐상태가 자못 오묘하여 관리관마저 우리의 은닉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정도로 하이테크휴식(?)을 취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때 이후로 나란히 10칸 이상 쌓아놓은 쌀 위에 박병장은 깔깔이를 뒤집어쓰고 취침하다가 간부에게 걸리곤 했지만, 전역때까지 쌀마대들은 박병장의 이동식침대(?)로 기능했다. 박병장 전역 이후로는 본인의 책상으로 쓰였는데, 겨울 내내 덜덜 떨면서 수많은 책을 읽어낸 배움의 산실(?)이기도 하다.

2) 실종의 계창

계단창고는 위치특성상 습기가 잘 차고 안에 은폐된 썩은고기도마로 인해 창고 특유의 썩은내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까지 어떤 검열에도 발각되지 않은 검열의 처녀지로 수많은 불온서적과 시디 등이 검토필을 받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도록 던져지곤 했다. 계창은 본인이 군생활 하는 동안 청소한 기억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정리에 취약한 곳이며, 물건들의 정리 상태가 그나마 몇번의 정리로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 형태가 열대우림처럼 울창하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사람들의 짱박힘터라기 보단 각종 검열에 취약한 사물들이 들고 나는 곳이라고 하겠다. 본인과 BMK가 막내이던 시절에 이곳에 랜턴을 들고 잠입해 짱박히곤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3) 암흑 엘창

계창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엘창은 본래 실제 LPG통을 보관하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트레일러-동력버너 부품이나 야전솥 등 대형물자들이 들어있는 곳이다. 이등병 시절, 병칼의 강요로 꽉찬 쓰레기봉투들을 은닉했다가 며칠 뒤 내부에 구더기로 가득차 눈삽으로 구더기를 파냈던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은 펩시 두장자를 필요시 꺼내먹도록 야전냉장고로 활용하기도 했고, 1-3종담당관의 검열땐 야채짬가구들을 이곳에 은닉해 두기도 했다. 그밖에도 폐급활동복을 짱박아 두기도 했는데, 보관한 것들이 대부분 캐더러운 것들이라 진입하는 사람도 금방 불쾌함을 느껴 오래 짱박히기보다는 잠시 쉬는 임시거처로 활용되었다.

4) 건창

2009년 1월로 접어들면서 취사장 뒷편이 모두 얼어붙고 쌀창에도 바야흐로 빙하기가 도래했다. 그 당시 쌀창을 애용했던 본인도 그 강추위에 몸을 떨며 꾸역꾸역 책을 읽다가 새로이 건창으로 그 거처를 옮기게 된다. 건창은 식용유나 조리도구, 멸치 등이 주로 보관된 곳으로 여름엔 모기장 창문, 겨울엔 비닐 창문을 사용하는데, 조리도구를 나르던 본인은 우연히 건창이 미닐하우스와 같은 온실 기능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이후 오후엔 이곳에 짱박히게 되었다. 겨울 내내 본인의 짱박힘터가 되어준 이곳은 왼쪽엔 공마대를 깔아 침대로 쓰이고 오른쪽에 찬 식용유깡통은 의자로 기능했는데, 이후 아예 식당 의자를 가져다 놓고 본인의 임시 사무실로 사용했다. 무슨일이 생기면 건창 문을 열고 내게 보고하는 식이었다. 노왕이 가끔 자물쇠로 잠가서 본의아니게 갇히기도 했으며, 비닐 특성상 주황활동복이 너무 적나라하게 비쳐 위치가 노출되는 약점이 있기도 했으나, 특유의 온실효과와 '일 하는 척 할수 있는' 위치상의 이점으로 2009년 봄까지 그 인기가 대단했다.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온실의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가 현재는 다시 쌀창으로 복귀한 상태이다.

5) 1하는 척, 1종

일하는 척하기에 1종만큼 좋은 공간이 없을 것이다. 재산대장을 쓴다는 핑계로, 조미료를 가지러 왔다며, 수많은 인원들이 이곳을 짱박힘의 장소로 애용했는데, 그런 이유로 이곳에 물건을 두는 것을 금지했음에도 책이나 펜 따위가 발견되곤 했고, 왁자지껄해서 문을 열어보면 후임들이 몽땅 들어가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른바 '짱박힘의 천국' 이다. 연대전술때 쌀창의 인원 수용능력 초과로 이곳에 노왕이 진입해 취침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 이후 후임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고 잠시의 휴식을 위해 들어갔다가 하나둘씩 아예 함흥차사 해버리고 선임들은 일하고 있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발생하여 이를 금지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다가 1종창고 담당이 취사에서 다시 계원으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 기타

주둔지 뒷편 계단으로 피신해 쉬고있는 BMK의 일과중 무단 휴식을 시작으로, 쟈스틴의 등장은 무개념휴식의 신기원을 열었는데, 예를들어 짬아저씨 호출하라고 보냈더니 3층 전화기, 헬스장 중앙 전화기, 주둔지 뒷편 전화기 등으로 숨어들고, 중대 화장실에서 장시간 무단독서, 조리 중 화장실에서 쌀뜨물 세수 등으로 위치파악을 교란시켜 선임들을 몹시 당혹케 했다.

그밖에도 사지방, 헬스장, 노래방, 생활관 등이 있으나 일과 이후에 가는 것이므로 언급만 하고 지나가도록 하겠다. 물론 취사지원 할 시간에 사지방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심지어 전원 농구하러 나가서 취사장을 비워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3. 결론

짱박힘의 극복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이루어져 각 창고에서 숨죽여 짱박히거나, 휴게실이나 간부식당에서 대놓고 쉬는 사태가 발생한다. 본인은 각종 창고나 심지어 조리 중 화부실 구석에 짱박혀 '조리하는 듯하나 조리하지 않는다' 는 격언을 남긴 바 있으며, 노왕은 늘 휴게실을 특유의 자세로 드러누워 당당히 일과중에도 자유를 만끽한 바 있으나 2009년 이후 이모의 등장으로 그녀와 휴게실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발생하고 있다. 양왕은 상향식 일일결산을 하러 가면 늘 돌아오지 않는데, 수차례 사지방에서 발견되었다. 본인의 닦달이 두려운 나머지 '소대 좀 잠깐 갔다올게' 하며 사지방으로 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도 알고있고 그도 내가 알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항상 그렇게 말한다. 이상한 일이다. 쌍포영은 허약함을 핑계로 수시로 의무대로 향해 돌아오지 않았으며, 림스틴은 전입 초엔 늘 1종에 동기들과 짱박혀 함께 일하지 않는 참여반동정책을 폈으나, 이후로는 일하는 척하며 일 안하는 본인의 기술을 습득하여 여전히 볶음조리 이상의 조리가 불가능한 어처구니없는 실력정체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시 스스로 자신이 취사병이 맞는지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다들 이러고 있다-_-..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tagged with  , ,
TRACKBACK ADDRESS
http://sungbok.com/trackback/929 관련글 쓰기
wrote at 2010/06/01 16:21
작년 3월 30일의 이야기.
전역 전 썼던 복병장 전역 이후의 이야기의 전편격으로 읽혀지고 있었는데.
이들의 힘이 하나로 뭉쳐지면, 과연 일용할 양식이 제시간에 나올 수 있을지가 매우 궁금해지는데요.
하긴 그네들이 아동들일때, 일 안 했으면, 고참때 그것을 당할 것이고, 아동 때 열심히 일했다면 고참 때 좀 편할 것이고, 인생사와 마찬가지로 돌고 돌고 돌고 하는 군생활.
이름 :
비밀번호 :
홈사이트 :
비밀글 :
*1  ...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 *560 
count total 378,682, today 6, yesterday 142
rss

전체 글 보기
추억 만들기
보낸 편지함
SB 행복투자 펀드
복2의 재테크 테크닉
복병장 취사일기
리포트 공작소
씨알 텍스트
성복닷컴 작업 노트
글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