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취사장 업무 난이도가 쾌속상승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취사병이 본연의 임무를 상실하고 취사장 관리병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 지랄지랄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만, 간부는 귀족(?)이고 병사는 서민(?).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많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은 거의 1/10으로 줄어들었다-_-..

취사장 지형도도 참 많이 변화했다. 1월, 일병정기 나간 나의 공백을 메운답시고 해안에서 양왕을 끌어오고 민간조리원도 도입했는데, 그게 무려 내 휴가 안에 모두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딱 두달 뒤, 상병정기를 나간 나의 공백은.. 없었다-_-..

취사병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은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건 뭐 이모를 소대장으로 하는 취사소대다-_- 중대장이나 보급관은 으레 무슨 일만 터지면 그 핑계로 우리 중 세명 자른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신병 2명이 온지도 어언 두달, 다시한번 토사구팽의 위기가 온 것이다. 병장들 무더기로 전역하고 한창 인원 부족할때 급하게 끌어온 소총특기들이 또 한번 제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내내 죽어라고 고생했던 나와 BMK. BMK는 그동안 고생한 보람도 없이 이미 인사계로 보직변경했고, 나는 무더기 병장 말년들 아래에서 끊임없이 짬당하던 구세대 취사병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신병들이 오기 전만해도 난 취사장을 대표하는 얼굴마담으로 당당하고 떳떳했다. 여름에는 BMK와 단둘이 모든 조리를 책임지고-_- 겨울까지 사실상 분대장 역할을 다했다. 그랬기에 당연히 그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어떤 보상도 없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하는 아동들을 키워놓고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넘겨주고 한순간에 뒷방노인신세(?)로 전락했다-_- 모두가 부러워하는 말년병장신세(!)라지만, 트집잡으려고 눈에 불을 켠 지랄같은 간부들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취사장 안에서 '일은 없는데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척 해야하는' 꼴도 참 행색이 좋아뵈지는 않는다.

특히 쉬는 꼴을 못보는 관리관 아래에서 무려 8시까지 일과가 연장되어버린 체제, 그 체제 하에서 '일이 없는' 잉여인력은, 간부의 눈총과, 실업자(?)라는 자격지심에, 후임들 눈치까지 보면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이틀 전에도 보급관의 '소총특기 세명 다 빼버릴까?!' 따위의 으름장이 나올 때마다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오늘은 대체 뭘 해야하나 하며 어슬렁거리며 냉장고를 여닫거나, 공연히 후임들에게 잔소리나 하고, 그렇게도 싫었던 부식을 쌍수들고 환영하는(일거리가 생기니까-_-!!),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과가 반복되고 있다.

비좁은 화부실, 돌아가는 솥은 3개밖에 없고, 그 3개의 솥을 담당하지 못한 잉여인력은 우왕좌왕 뒤에서 두리번 거리기만 한다. 내가 일을 하면 후임들은 놀거나 담배피고, 내가 일을 안해도 손이 남는 후임들은 놀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늘 잉여인력이 생겨난다.

게다가 요즘은 이모까지 일을 열심히 하신다! 열심히 일하시는 이모를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책을 덮고 사라지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늘 나보고 일 잘한다고 칭찬하시던 이모였기에 그 미안함이 자꾸 커지기만 한다.

양왕은 늘 상향식 가면 돌아오지 않고, 노왕과 나는 관리관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기나 하고. 차라리 마음편히 책이라도 읽을 수 있음 좋겠다며 오늘도 쌀창고에 숨었다가 건조창고에 숨었다가 하면서 찌질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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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04/13 17:42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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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04/15 18:21
앙골도 비스므레한 말을 했고 뭐 결론은 그런 생활이 조낸 힘든것보단 훨 좋은거..였는데; '어차피 집에 가면 끝이다' 라는 현실도피적(or미래지향적) 결론을 피력하는 녀석도 있더군. 어디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고심중이다. 그래도 이번주는 2대대ATT추진이랑 연대본부 주둔때문에 저번주보단 훨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 모처럼 시간 훅훅 가는 한주가 되는 것 같네. 컴퓨터도 오늘에야 하고있으니.

왕고가 분대장파견교육을 가버리고 나니까 그의 부재가 느껴지긴 하더군. 아무래도 세세한것까지 전부 다 지시하고 일하던 사람이라 그런가, 갑자기 그의 공백 덕에 내가 그 역할을 하다보니 역시 사람 다루는게 가장 힘든 일인것 처럼 느껴진다. 군대란게 억지로 온 사람들의 집합이다보니 역시 열심히 하지 않으려는 후임들의 무기력함을 억지로 '하게끔' 통제하는게 오히려 나까지 무기력하게까지 하더군.

걍 집에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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