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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2008.02.12
부모님, 친구들과 함께 간 306보충대. 처음 맞이하는 세상이 낯설기만 하다. 아마 여기 모인 2천명의 심정은 전부 나와 같겠지. 뒤에서 '이성복 화이팅!'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입영신체검사지를 잃어버렸다. 구대장 왈 '외워' 근데 그걸 어떻게 되운단 말인가. 난 강당에서 짓밟히고 구겨진 남의 검사지를 어렵사리 주워 내 측정결과를 적어야만 했다. 위기일발이었다. 일단 6구대로 배치받았다. 훈련병도 아니고 '장정' 이란다. 군대 치고는 분위기가 강압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둘째날, 2008.02.13
깔깔이는 따뜻하다. 머리감고 싶다. 목욕하고 싶다. 따뜻하게 자고싶다. 의식주 자체가 원활하지 않다. 군대니까 어쩔수 없는거지만. 처음 먹어보는 군대리아, 빵은 두갠데 패티가 하나네; JSA부대 차출 중. 다행히도 난 안뽑혔다. JSA 월급이 100만원이란 얘기에 생활관이 술렁술렁 하다. 생활관의 '장정' 들은 짧은 시간에도 공감대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내 예민함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보낼 옷가지를 담을 상자 안에 급하게 글자를 끄적였다. 한참 끄적이고 있는데 구대장이 들어와 편지지와 봉투를 한개씩 주고 갔다. 오리털파카 부피가 너무 커서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꾹꾹 눌러담았다. 저 두꺼운 오리털파카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깔깔이가 훨씬 따뜻하다. 깔깔이에 충분히 위안을 얻은 나는 오리털파카를 조금은 편하게 떠나보낼 수 있었다.
셋째날, 2008.02.14
너무 춥다. 새벽에 덜덜 떨면서 일어났다. 스팀이 5시반부터 나오는걸로 보아 완전 가짜난방이다. 무단 흡연자 때문에 구대장의 분노, 화장실 통제. 하지만 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배는 아직 군용이 아닌지 계속 속이 좋지않다. 훈련소부터는 정말 힘들텐데. 지루하다. 훈련소에 가면 이런 지루함조차 부러워하게 되겠지? 마찬가지로 자대 가면 훈련소를 부러워하게 될테고 말야. 전투복도 아직 익숙하지 않고, 전투화도 약간 작아서 그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관문 소망교회에 왔다. 여기에도 믿음은 있다. 하나님 며칠간 기도없이 밥먹은거 용서해주세요. 모든 곳을 옳은쪽으로 이끌어 주시길,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울컥할까봐 소리내어 기도를 못하겠다. 목사님의 선동(?)에 따라 분위기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고 있다. 우린 아직 20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일 뿐이다. 이렇게 점차로 부모의 곁을 떠나가는가 보다. 바로 내일이 훈련소 배치구나. 아직도 군대 실감이 안나는데. 그렇게 3일째 밤은 떠나가고 있다.
넷째날, 2008.02.15
생일이다. 군대에서 맞이하는 첫번째 생일, 왠지 구차하게 느껴졌다. 부대 배치를 하러 강당에 갔다. 어머니가 저 멀리 보였다. 난수부여 하는데 어머니께서 첫번째로 번호를 고르셨다. 난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데, 유독 빛나는 우리 어머니. 한껏 일그러뜨린 표정으로 눈물을 기어이 구겨담고 있었다. 행여나 내가 보일까봐 우리쪽을 두리번거리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애처로운 눈빛을 뒤로하고 통제에 따라 우르르 강당 밖으로 빠져 나가야만 했다. 훈련소는 9사단, 자대는 17사단. 인천에 있는 꿈의 17사단이라는 말에 은근 기대가 된다. 생활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화이팅을 외치며 며칠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진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현수씨가 생일 축하한다며 숨겨뒀던 막대사탕을 건네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입대하던 날 아버지 차를 타고 가던 길을 버스 안에서 다시 마주했다.
나도 논산훈련소 4주, 대구 군의교에서 6주간의 후반기를 받고, 17사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꿈의 17사를 가네하고 눈빛을 반짝였지만......
지금도 알 수 없는 삼각팬티가 사각팬티로 작계가 바꿔서 어쩌구 저쩌구, 너네 군생활 꼬였다는 이야기나 듣고,
별 생각없었음.
하긴 포병은 3보이상 승차에, 의무병은 더군다나 더 할 일이 없었음.
하지만, 포병 의무병의 역활은 잡일을 맞아서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음.
작업부터 위병, 관사병, 군종병, 대대 정훈병 교육, 연대 응급처치 교육 조교까지 별의별 것에 동원되어 열심히 놀았음.ㅎㅎㅎ
지나고 나니 참 많은 것을 했네요. 그 때는 이게 뭐야 하면서 지냈는데.
지나고 나니, 군생활 어디서 하나 같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 다른 곳과 비교를 할 수 가 없으니까, 모두 자기가 힘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결정적으로 17사가 꿈이라고 불린 것은 행군코스가 평지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1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