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장같은 선임이 되고싶었다. 유치하지만 나도 전역하는 날에 '당신 없으면 어떻게 하냐' 는 따위의 걱정어린 존경이 듣고싶다. 취사장에 들어오고 적응하고 때로 맞서면서, 결국 이렇게 빨리 고참이 되었고, 항상 선임에게 물어보고 배우기만 했던 내가 어느순간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배울 사람도 없어서 답답해 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내가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결국 그런 고참스런 유치함으로부터, 자신감 하나는 가득 챙겨간다.

항상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그 어떤 치열함보다도 더 뜨거워 화상을 입듯 늘 힘들었다. 이리저리 치이며 생기는 생채기는 처음을 맞이하는 치열함이기에.. 하지만 난 결국 모두 이겨냈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늘 걱정이 많고 나 자신에게 기대하는게 많아서 대체로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지만, 나는 부족하면서도 점점 부족하지 않은 내가 되어가고, 항상 모자라다 생각하면서도 가장 부지런히 모자람을 채워가며, 남들이 보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내가 되려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다. 끝없는 자아성찰이 지금까지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까.

분명 20살의 나와 24살을 앞둔 나는 많이 다르고, 무척이나 강해졌고 현실적이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때로 유쾌하다.

전역하면 학교에 가고 졸업을 하고 유학을 가고, 부모의 건강과 항상성을 담보로 한 도박 또는 도피를 꿈꾸고 있지는 않았던가. 유복한 집안의 자식들이 선택의 기로에 던져지는 현실적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학벌을 채우고 나이를 채우고 몸값은 높아지겠지만,

부모의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데.

유학을 가는 사람도 대단한 도전을 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사회에 진출해 차근차근 돈을 벌어가려 하는 것도 대단하다. 그 둘의 차이는 크지만,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접근방식은 결국 어떤방향이든 내 소망이 된다.

20대의 중반.

50대에 접어든 부모님.

이제 5년 남았다.

내 인생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두려움에 늘 앵커링 되어있는 내 가슴 속 적응의 생채기는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끌어당기고 싶다.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인정받고 싶고, 내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다.

보다 강한 내가 될 것이라고, 당신들의 희망을 믿어 달라고, 기다려 달라고..

조금 더 가시적인 모습으로, 조금씩 현실에 근접한 내가 되어가고 있으니, 사회로 던져지는 그 순간에 당당할 수 있도록. 그래서 왠지 남은 1년의 군생활은 왠지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질것 같다.

사람은 미래 앞에 빛나는 희망을 먹고, 부서지지 않는 과거를 애써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때가 좋았다' 며 과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던져졌던 것들', '던져진 것들' 은 결코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나는 희망을 먹고 만족할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똑바로 걸어갈 것이다. 행군할때처럼 차곡차곡 한 발자국 씩. 힘을내자 힘을 내. 죽을 것 같아도 절대 죽지않아.

지금까지 나는 늘 끝없는 반성과 반추로서 스스로를 이끌었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를 보정하고 다듬어 줄지언정 미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아버지 역시 현재를 보장해 줄지언정 미래의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아버지의 남은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아버지의 미래는 나지만, 나의 미래는 아버지로 회귀할 수 없다.

늘 걱정스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던 내 모습을 이제 고쳐나가려 한다. 뒤를 돌아보면서 어정쩡하게 기울지 않도록. 똑바로 앞을 보고 걸어갈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와 같아서 끝없이 잔소리하며 나를 고칠것을 요구하지만, 그 그림자는 내게서 뗄수 없으며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 그림자의 미래 동작을 이제 내가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그려나가고자 한다. 더이상 과거를 괴로워하지 않고, 미래에게 성실하며 당당한 내가 될 것을 다짐해 본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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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5/28 19:08
멋진 글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들의 정립...

97년도 복학할 때나, 2010년 복학할 때나, 사회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우리 때는 인식하지 못 했지만, 북핵문제로.
지금은 천안함 사태로...

우리나라는 너무나 소모적인 곳에 힘을 쏟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네요.
독일 대통령이 연초에 우리나라에 방문해서, 통일은 차근차근 준비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준비가 된다면 좋겠지만, 상황에 맞춰 수정해나가는 거라고 충고를 해주고, 통일비용이 많다고 겁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통일된 이후에 생기는 시너지가 그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에, 통일비용은 일시적으로는 충격을 줄 수는 있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닐꺼라고 얘기해주는데. 음 통일 20주년된 곳의 대통령은 저런 생각을 하구있구나라고 느꼈었죠.

연초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주역, 뭐 이런 것은 잘 모르지만, 경인년이라고 金의 기운이 2개나 들어갔다고, 이런 해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는데...
벌써 큰 사건이 한 건 터진 것이 좀 긴장을 타게 하지만... 잘 흘러가겠죠. 60년 전처럼만 되지 않으면....
그동안 우리도 알게모르게 컸을꺼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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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5/30 16:26
이런 글을 썼었나 하고 되새김질 하다가 달리기님 글 읽고 '아' 하고 있습니다..ㅎㅎ 본문보다 더 좋은 댓글입니다..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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