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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사병의 날
자금문제로 2시가 넘어서야 겨우겨우 밖으로 나왔다. 이 얼마만의 외출인가!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저번처럼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육공을 타고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기쁨! 7월 이후로 고작 3개월 갇혀 살았을 뿐이지만, 심지어 모래 날리고 매연 날리는 부옇고 푸석푸석한 공기였지만, 바깥은 상쾌하고 맑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했다. 이대로 달려가 집으로 향해 부모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검단에 내린 발걸음, 다음달이면 이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박병장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온탕에서 그동안 지친 몸을 잠시나마 달래주고, 맥주를 사러 농협에 들어갔다.
대단한 가격들.. 깜놀..
우리 쌀창고에 담긴 쌀들이 수천만원어치란 것과, 우리가 우습게 두손으로 두개씩 퍽퍽 깨 담는 계란 한줄이 2만원이 넘는다는 것, 눈감고도 깔 수 있는 맛살 한봉지가 4천원.. 아무렇게나 뿌리고 (심지어 버리기까지 하는) 참기름 1리터가 만칠천원에 달한다는 사실. 귀엽게 담긴(?) 몇만원어치(!) 고기를 보면서, 오늘 하루 내가 무심스레 썬 고기가 100kg에 육박한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1년간 써대는 식재료는 대체 몇억원어치란 말인가.. 그야말로 후덜덜이다!
대낮 길거리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문득 자유롭던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미치도록 그립다. 다만 지금은 입속의 쌉싸름한 감각만이 그때를 추억할 뿐..
결국 또 pc방이다. 내가 pc방에 와봤자 할 수 있는건 기껏해야 '서든' 정도의 캐주얼게임 뿐. 그런 어떤 단순한 게임이든 미치도록 즐겁게 해주었던 좌철민이나 주완이는 이제 곁에 없는데. 방명록에 글귀나 몇자 적어줘야지. 부대 사지방에서도 할수 있는 싸이질을 결국 pc방에서 돈내고 또 하는거지 뭐.
저녁 거나하게 먹고 또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은 시작되겠지. 늘 즐거운 이야기만 했던 걸까, 친구들은 내가 땡보인줄로만 안다. 그래, 땡보 맞다! 지금 이렇게 넋놓고 pc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다음달이면 내 맞선임 외엔 분대에 선임이 없다. 취사장의 거대한 파라솔같은 박병장도 떠날 날이 코앞이다. 그렇게 투고가 되는 것인가. 왕고보다 좋다는 투고. 그 투고를 이제 고작 일병 꺾일(!)놈이 해야 한다. 아무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군대에서 맡는 자리가 어디 할만한 자리인가..? (왕고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ㅠㅠ;)
취사장 문을 열며 새마음 새각오로 열심히 하겠다고 비장하게 마음먹던 6월 초, 그리고 대영이가 들어오고 어떻게든 실력있는 맞선임이 되고자 발악하던 6월 말, 신병위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던 7월말, 지금은 전역해버린 김병장과 다투고 진술서 쓰고, 긴장 가득히 중대장-보급관 등등에게 불려다니던 9월 초, 그리고... 지금.
내 생각이지만, 난 지금까지 잘 해왔다. 내 스스로에게 놀랄만큼 기대 이상으로 잘 해왔다. 지금 내 곁의 선임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난 정말로 잘.. 해왔다.. 책임감은 여리고 약한 나를 매정하게 떠밀어 게으름을 깎아내고 성실을 부추겨왔다. 그 둘은 끊임없이 나를 억압하듯 충돌했지만, 난 감히 게을렀던 날보단 성실했던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자신하고 있다.
군생활은 하루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한결같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까지는 분명 열심히 살아왔다는 거다. 그리고 오늘 이 짧디 짧은 외출 속에서 다시한번 비장한 다짐을 해본다. 언젠가 다시 돌아볼때 오늘의 이 순간이 내 군생활 중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었길 바라본다.
먹는 비중이 커지니 다른 부분의 지원이 빈약?
'뭐 조금씩 고쳐지겠지만', 이 이야기는 몇 십년째 진행형~이라는거.
군납시스템만 바꿔도 대박일꺼라는데.... 한 번 바꿔보지.
우리 때는 군수시스템 전산화한다고 한바탕 난리도 아니었는데.. 영문으로 4글자였는데. 헤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