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지 않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몹시 고된 작업이다. 안읽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오히려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한 것 같다. 사실 이건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신화에 대한 글이라고 하는게 타당할 듯 하다...;;

어릴적부터 숱하게 신들의 이름, 그들에 대한 단편적인 몇몇 이야기들, 그리고 신과 관련된 그림, 영화나 만화 등을 접해 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동양적인 정서를 좋아하고 가까이 해왔기에, 삼국지나 열국지 같은 책들은 마르고 닳도록 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거대한 이야기는 20살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것도 나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끄럽게도 과제물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실상 어릴적의 나를 지배했던 동양적인 관점이 좀 지나친 감이 있어서 서양과 관련된 이야기는 괜히 슬금슬금 피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막 성년의 나이가 된 이 시점에서 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것이, 이미 굳어가고 있는 내 머리와 가슴으로 읽어나가기에는 퍽이나 벅찬 것이었다.

단순한 표현들, 예를들면 ‘참 재밌었다’ 따위의 문장으로 독후감을 채워나가던 어린 시절이라 할지라도 그 때의 내 모습이 지금보다는 훨씬 순수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 않은 세월이라 할지라도 천천히 지각이 나고 이제는 제법 유년기의 티를 벗어낸 지금의 나. 이제 어릴적의 순수함으로 책을 대할 수 없는게 안타깝다. 하지만 이번에 주어진 ‘그리스 신화 읽기’ 라는 과제를 20살의 감성으로 읽어 나가고자 노력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신화에 대하여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접했던 그때 그 모습과 달리 그 신화에 대한 저자의 쉽고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아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풍경, 그림, 조각, 건축 등이 서서히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신화를 이해하면 차가운 대리석이 말을 걸어오고 한동안 그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는 저자의 말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이 엄청난 양의 그림과 조각품의 사진 사진자료를 대체 어떻게 구했는가 하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자료들이 대부분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하니, 저자의 노력은 글에서 뿐만이 아니라 꼼꼼히 촬영한 사진들에도 녹아 있는 것이었다.

(중략) 저자는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를 제시한다. 신발, 사랑, 나무, 저승, 술, 뱀 등을 키워드로 한 12가지 열쇠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미로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된다. 이렇게 저자가 이 신화를 주제별로 재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독자들에게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신화를 이해하고 풀어나가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무수한 신들이 연출하는 드라마는 뒷날 인간 세상에서 그대로 되풀이 된다. 신화를 아는 일은 인간을 미리 아는 일이다’ 라고 했다.

저자는 자신의 시각과 화려한 삽화를 곁들여 재미있게 쓴 글들을 모아놓았다. 부분적으로 신이나 그 밖의 등장인물이 직접 서술하는 방식으로 꾸며놓은 부분도 있었다. 주로 잘 알려져 있는 테세우스의 신화나 제우스의 탄생 비화 등을 소재로 삼았다. 각각의 글은 간략한 편이나, 대신에 그러한 간략한 글들이 뭉쳐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어나가다 보면 초심자인 내게는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차근차근 설명도 많이 뒤따르고 있어서 이야기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보면 그것은 신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래서 인본주의의 근간이 되어 르네상스를 일으킨 것이라고도 한다. 이 신화의 신들은 이름만 신이지, 고귀한 모습 대신에,  인간의 본성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기에, 내가 이렇게 이 신화를 읽고 인간적이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화의 세계를 통해 옛사람들의 자연과 인생에 대한 사색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신화를 만들어낸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인들의 욕망, 그리고 신화 속에 그들이 불어넣은 신들과 인간들의 욕망은 단지 옛 사람들만의 그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요즈음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욕망을 살펴볼 수 있다. 이카로스의 이야기, 판도라의 상자, 에로스를 두고 하는 프쉬케의 갈등은 비단 과거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들이다.

그들의 사색은 21세기에도 무리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신화로부터 지금까지의 그 긴 시간동안 그들과 우리와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변했다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그들과 우리와 달라진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생각들이 지금의 우리들의 사고 속에서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순환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은, 뿌리깊은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똑같이 흘러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테면 온고지신의 의미를 몸소 확인하기 위해, 신화를 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중략) 저자는 스스로의 이름을 내세울 정도의 자신감과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12가지의 열쇠를 통해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유롭게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넘나들다 보니, 조금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들 간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는 솔직히 좀 어려웠다. 특히 이전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접해 본 적 없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내게는 혼란스러운 과제이기도 했다. 저자는 줄기차게 상상력을 강조했지만, 초심자의 해석과 저자의 해석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앞으로 신화에 흥미를 가지고 관련된 서적을 읽어 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조금씩 보완될 것이다.

이 책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야기로 시작하여 아리스타이오스의 사슬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 이야기들은 각각 ‘신화는 미궁과 같다’ 는 사실과 ‘신화는 진실만을 말한다’ 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미궁은 그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듯이 신화 역시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어떻게 신화라는 미궁속에 발을 들여놓고 빠져나올 것인가. 그러나 방법은 있다. 그것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다. 상상력이다’ 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아리스타이오스가 둔갑술의 맹수인 프로테우스를 사슬로 묶어 꿀벌이 죽은 이유를 알아냈듯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 변신의 도사인 신화를 잡아 묶으면 제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중략) 저자가 제시한 열쇠 중의 하나인 신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고 나서 나는 ‘신발은 곧 우리의 목표‘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의 의미를 찾아 헤맨 이들이 왕과 영웅이 된다는 신화들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신발의 의미는 단지 신는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왕자와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고, 전래동화의 콩쥐는 꽃신으로 인해 고을 원님과 맺어진다. 그리고 중국의 달마대사의 잃어버린 신발 한 짝, 그리스 신화의 이아손과 테세우스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잃어버린 한 짝의 신발이 계기가 되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잃어버린 신발을 찾는 신화 속의 주인공들은 우리에게 현실 세계에서 찾아야 할 목표를 제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잃어버린 신발 한 짝, 곧 우리의 목표를 찾아 떠나는 인생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신화도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인지도 모른다‘ 고 하는데, 그의 생각에서 내가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신화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시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특별히 ’신발‘ 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이곳에 적는 까닭은, 바로 그 신발 한 짝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신화에 대한 연구와 고민은, 서양인들의 고민에 비하면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이 신화를 읽으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유서깊은 나라들에 그들만의 신화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특히 신화를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처럼 유적을 보존하고, 계속 널리 알려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신화적인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는 그리스가 매우 부럽게 느껴진다. 옛 사람의 이야기에 불과한 신화, 바로 그 신화가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간이, 인간 재발견의 힘을 바로 신화에서 찾은 것이다. 서양인들의 신화, 그들의 신화는 지금까지 널리 읽혀왔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그들의 생활 터전에서 여러 가지 유적으로 신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신화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며, 흥미를 가질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단군신화를 그저 미신에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매도하고 자민족의 건국신화를 업신여기는 우리민족의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도, 국사 시간에도 곰부족과 호랑이부족 이야기가 나오지만, 우리 민족의 뿌리에 대한 그 근본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에 대해 우습다며 키득거리는 학생들, 심지어는 교사까지도 그 내용이 제자들의 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내용으로 여겨 자세히 다루지 않고 쉽게 지나치는 실정이다. 단군신화가 그리도 초라한 이야기에 불과한가. 그것이 우습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내용들도 마찬가지로 우스워야 정상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한 뒤 하는 소리가 더 우습다. 단지 서양의 신화라는 이유로 ‘괜히 세련되어 보이고 그들의 문화가 부럽게 느껴진다‘ 는 것이다. 상당히 자민족 비하적인 생각임에 틀림없다. 본질적으로 동등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상품이 보다 세련되어 보인다는 생각 때문에 외제를 구입하는 심리와 다를바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단군신화 외에도 동명성왕 이야기, 박혁거세 이야기 등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신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나라의 대중들의 우리신화 읽기는 대부분 뒷전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단군신화, 결국 그들의 문화적 가치는 동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화는 세계적으로 문화화 되고, 어떤 신화는 자민족에게도 버림받는 모습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신화를 우리 스스로 대접하는 시대는 언제 도래할 것인가? 신화와 공존하는 유럽인 앞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신화의 문화화는 민족의 의식에서부터 시작되는 말하고 싶다. 신화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고, 신화에 대한 유적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무 소용없는 일일지 몰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지금에는 이것을 종교로 보지 않고 고전 문한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신화가 많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내용이 풍부하고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신화는 없을 것이다. 이 신화에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오누이간의 사랑이라든지, 소와 인간의 사랑, 신과 인간과 요정의 사랑 등 상상력과 교훈을 주는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과 고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전으로 취급받으면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우리 신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 서양인의 고전은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원동력 또한 바로 우리의 신화로부터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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