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조국의 남쪽에서 대학을 다니던 주인공 이명준, 그는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 방송 시간에 나온 일로 하여 경찰서에 불려가 고문을 받고 월북을 감행한다.

그러나 북한에도 그가 원하던 사회는 없었고, 그의 눈에 비춰진 그곳의 사회는 사회주의 제도의 굳어진 명령과 복종만이 보일 뿐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남한, 그리고 인민대중에게서 역사의 주체자리를 빼앗은 북한... 이명준은 이념의 갈등 속에서 결국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삶의 광장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월북해 있던 이명준은 무용수인 은혜를 만나 그녀와의 사랑에서 이념의 무의미함을 다소나마 보상받지만, 그것은 개인적 삶의 한정된 삶의 행복일 뿐이었고, 진정한 의미의 광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후, 은혜는 모스크바 공연을 떠나고 명준은 무너져가는 북한 공산군을 따라 낙동강 전선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마저 새로운 삶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렇게 전쟁을 회의하며 지내던 중 그는 우연히 간호병으로 돌아온 은혜와 재회하게 되고, 마지막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는 딸을 낳을거라 했다. 죽기 전에 자주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은혜는 그 약속을 뒤로 한 채, 결국 전사하고 만다.

은혜마저 잃은 명준, 그는 서서히 삶의 의미를 잃어갔다. 전쟁 포로가 된 그는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가 그리던 광장은 진정 남, 북 어디에도 없었던 것일까? 남, 북 체제에 대한 절망과, 그것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던 은혜의 죽음은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끌어들였고, 결국 그는 중립국 포로들을 싣고 가던 어느 날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에의 투항이 아니라 사랑에의 귀의로 승화된다. 선상에서 처음 갈매기를 보았을 때, 그 새는 감시자의 눈길로 불안감을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갈매기는 이명준의 아픈 사랑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 갈매기들은 물론 딸을 낳겠다던 은혜와, 뱃속에 뿌리내린 그의 딸이었다.

바다 위에 그들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는 것은 바다가 진정한 사랑이 가능한 이명준만의 밀실이고 광장임을 확인케 한다. 다만 그것이 모두가 소망하는 광장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만의 밀실이었다는 것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현실세계의 도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바닷속에서 그가 꿈꾸던 세상, 밀실과 광장이 뚫린 장소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밀실과 광장이 막힌 채 이념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햇볓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뚫으려던 밀실과 광장에의 장벽, 이는 어찌 되는 것일까. 정권이 교체되면 결국 멈출 것인가, 아니면 50여년의 이념적 갈등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란 자기만의 공간인 '밀실' 과 사회적 삶의 공간인 '광장' 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주인공 이명준이 '광장'을 찾아 월북하고, 은혜와의 '밀실'로, 그리고 전쟁이라는 '광장'을 거쳐 중립국이라는 또 다른 '밀실'을 택한 후, 결국에는 바다를 택하는 그를 지켜보았다.

이명준의 바다는 그만의 광장이요, 동시에 밀실인 것이다. 비록 그가 그만의 밀실에서 세상을 너무 편협하게 바라보았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매력적인 삶을 살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주관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보다는, 그런 삶에 회의를 느끼고 비록 편협하더라도 원하는 삶을 찾아나서는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인다.

비록 그는 원하는 삶의 길을 찾지 못한 채 허무의 극치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죽음으로써 이념없는 밀실과 연결된 사랑의 광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밀실과 광장은 격리되어 있다. 아직도 이념적인 대립은 물론이고 무력적인 도발마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민족의 아픔을 안은 휴전선 또한 건재한 지금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직도 예측할 수 없는 한반도의 미래, 과연 '광장' 은 무엇을 제시하는 것일까?

어느새 이명준에게 몰입된 나는 한반도의 현재를 생각하며 무상감에 빠져들었다. '이념의 갈등 속에 이상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조명' 이 주제라면, 궁극적으로 쓰여진 목적은 무엇인가?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제시하는 작가의 해결책을 깨닫지 못하는 한, 나는 무상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탄식도 그치기는 어려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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