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d #568
categorized under 씨알 텍스트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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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수년전의 날씨좋던 어느날,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던 생각이 난다. 반삭발을 하고 이미 낡아 반질반질해진 교복을, 입는다기 보다는 뒤집어 쓴다는 느낌으로, 그래서인지 왠지 누덕누덕해 보이는 인생들의 어수룩한 경주 구경길. 교복답지 않은 짧은 치마에 헐렁헐렁하면서도 풍성해 보이는 양말을 신은, 대체로 아담한, 혹은 짜리몽땅한, 어찌보면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 그러나 얼굴은 어쩐지 옷맵시와 어울리지 않는 섬나라 여학생들이 지나갈 때의 그 눈돌아가던 군상들, 그 설렘을 아직 잊지 못한다.
한없이 남자들만 가득할 것 같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치열하게 지나쳐 온 지금의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설렘을 가져다주었을 오티와 답사 등 몇몇 이벤트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설렜던 어린날의 여행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엠티라는 것도 결국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고등학교때는 경험할 수 없는, 대학생활 만의 낭만 중 하나이니까.
그날의 청량리 역에는 당장 몇시간 앞으로 다가온 엠티에 들뜬 군상들이 운집해 있었다. 세상의 모든것들이 밝아질것만 같은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와 웃음소리, 전날 쓸데없이 잠을 설쳐버린 나의 피곤함을 충분히 억누르고도 남을만한 젊음이 과연 그 거리에 가득했다.
빨간색 버스에 몸을 실은 우리들, 은아는 돈을 미리 지불한줄도 모르고 카드를 찍었고, 문규는 단말기 앞에서 움직이다가 그만 지갑이 단말기에 닿고 말았다. 1700원이 날아가는건 과연 순식간이었다. 버스는 온갖 정류장에서 다 멈추는가 싶더니 그래도 꾸역꾸역 가평에 닿았다.
쏴아아아.. 세상 여러가지 소리들 중에 또 물 소리만큼 시원한것도 없다. 아이들은 벌써 물 속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흐르는 물 소리가 첨벙거리며 뛰노는 그들의 물장구 소리를 덮는다. 돌 위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며 어릴적의 유쾌한 물놀이를 몇개 떠올렸다. 초록색 물 위에는 초록색 산, 펜션 주위를 둘러싼 산들은 마치 도넛 모양으로 우리를 널찍이 감싸고 있었다.
벨기에산 삼겹살이 기름을 떨굴 때마다 화로의 불은 강하게 타올랐다. 거진 불쇼와 함께 삼겹살을 굽느라 여념이 없는 종윤이와 문규, 그들 앞에는 먹기만 하는 나와 주완이가 있었으니.. 삼겹살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삼겹살을 먹는데 술이 또 빠질수가 없는데, 문규의 야채참치 발언과 급명랑해진 은아를 바라보며 큰웃음을 멈출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야채참치를 토해내 다시 지상으로 내려보낸 뒤에도 맛있다며 또 먹을 수 있는 문규의 태연함을 따라갈 자가 또 누가있으랴!
펜션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 길 앞에는 핸드폰을 들고있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곳까지는 밝았지만, 그 이후로는 가로등 하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가로등을 지나치자 빛은 점차로 사라졌다. 가로등도 없는 길로 들어가는 느낌은 제법 짜릿하다. 머리를 지배하던 복잡한 생각들이 어느새 증발하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초입, 곤두서는 촉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발 감각에 모든것을 의지하고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를 오른쪽에 가지런히 유지한채 걸었다. 돌아 나올때는 반대로 물소리를 왼쪽에만 두고 나오면 될 일이었다.
타인들의 폭죽놀이를 저만치 떨어져서 홀로 감상하고 있었다. 날 찾아나와 등 위에 손을 올리며 옆에 앉는 현우, 앞에는 이따금 터지는 폭죽을 안주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도 나를 잘 따르고 싶다는데, 한편으로는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하단다. 그리고 곧 이 엠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앞에서도 우리들은 진지했다. 난 그에게 있어 믿음직스럽고 좋은 형이었다.
새벽에는 이미 술이 없어도 충분했다. 씨알짱 진주완이 초저녁부터 잠들어버린 사이, 비공식 차기 씨알짱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다음날 충분히 자고 일어난 사람은 아마 씨알짱 뿐이었을 것이다. 이불을 덮고 누운 와중에도 박종윤의 코골이를 흉내내기도 하고 각자 창조적인 변용을 하며 키득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드르르르르렁....하아아아아....드르르르르렁....헤용이....드르르르르렁....지켜줬어요??'
하지만 박종윤은 놀랍게도 코를 골지 않았다. 코를 곤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는 제보를 받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박종윤의 코를 관찰해 보았지만, 놀랍게도 잠잠했다. 박종윤이 잠들때면 늘 함께한다는 천둥이와 벼락이는 세암장을 미처 빠저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작년 씨알지의 준용선배의 맛깔나는 씨알엠티 후기를 처음 읽었을때 느낀 것은, 내년에도 저런 엠티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이번 후기를 쓰면서 다시 또 그 글을 읽어보니, 엠티후기답지 않은 글솜씨의 부재를 스스로 통감할 수 있었다. 답사를 가든 엠티를 가든, 나는 여행을 가면 생각할 것이 많아진다. 생각할 것이 많다보니 멀뚱멀뚱 혼자 돌아다니는 일도 잦고, 그러면서 머리속에서는 무언가 깨닫는게 있을지 몰라도, 재미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소홀해지거나 놓치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또한 있었던 일들만 단순 나열하는것이 아니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변명을 하나 붙이자면, 재미있었던 사건들의 상당량은 여기에 실을 수 없는데, 그 이유를 '여자이기 때문(?)' 이라고 해도 될까. 은아가 만약 남자였다면, 내 글솜씨가 부족한 와중에 그나마 기억나는 것만 싣더라도, 제법 재밌는 엠티후기가 될 수 있었을텐데. 나는 여기에 차마 은아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남긴 수많은 전설들을 기록해둘 수 없음을 이 글 말미에 가까스로 밝혀두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