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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zed under 리포트 공작소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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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1 독후감
부모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손과 발의 고마움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부모의 사랑도 너무 당연해서 또한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원래부터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고 덕분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송스러움을 안고 살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만큼, 때로는 꾸중으로, 때로는 누구에 대한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 곳은 없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용기도 없거니와, 그 꾸중 자체가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거리 자체가 되지 못했다. 결국 내가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곳은 일기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일기 검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화가 날 때, 우울할 때, 괴로울 때 일기를 써 나가곤 했다. 항상 기분 나쁜 일만 있는 일기였다. 내 성격을 고치려는 생각은 없이, 그저 와신상담의 기분으로 일기에 매달리는 집착이 생겼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그 일기를 보시게 되었다. 물론 그 때의 감정이, 일기를 쓸 당시의 감정과 같을 수 없지만, 일기를 보시고 하시는 어머니의 꾸중에 나는 부끄러움 반, 죄송스러움 반으로, 나는 4년 동안 써 오던 일기를 모두 버리고야 말았다. 며칠 후에 나는 무언가 내게 변화가 될 것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쓰면서 내가 왜 그랬는지를 돌아보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러한 책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 책은 바로 이 '등대지기' 였다.
내가 읽게 된 소설 '등대지기' 는 내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룬 글이었다. 메마른 생활 속에 메말라 가고 있는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환기시켜 준 책이라고나 할까.. 참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준 이 책은, '효'라는 사상도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 않은 내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것이었다. 처음에 감상문을 쓰려 할 적에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쓴 감상 역시 메마르고 와닿는 느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망설이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국 펜을 들게 된 것은, 응어리진 내 속마음이 담긴 일기를 보시고도 이내 용서하시고 또 다시 나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다. 기분 나쁜 일들의 뒷풀이만 씌여 있는 일기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는 또 한번 나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나를 사랑하실 테지만, 정작 내가 품은 사랑은 기복이 심했다. 내가 품은 마음 속의 사랑. 나는 성적과 비례한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내 멋대로의 추측, 그것은 '등대지기' 를 읽은 후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등대지기' 의 주인공 재우, 그와 나는 어쩌면 비슷한 처지인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잇었다는 점.. 다른 점이 있다면, 재우는 늦게나마 모성애를 깨달은 것이다. 재우의 어머니께서 구명도에 오시기 전까지 재우와 나는 어머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편견을 더 중시해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오히려 등대지기의 형 명우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적인 인물의 표상, 명우. 그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지만, 정작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동생에게 떠맡기고야 만다.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 모든 신경을 다 쓰실 때, 그 때의 동생도 아마 재우의 심정과 같았으리라. 형 때문에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서 맏이와 달리 필요한 것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동생의 태도와 행동을 보며 새삼스럽게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얼굴을 들 면목도 없는 인간이다.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버림받은 영혼, 재우를 받아들여 준 것은 등대였다. 8년동안 등대지기로 일한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배웠고, 어느새 등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면하게 된 형. 그렇게도 잘 되길 기원하며 키운 명우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자기도 증오했던 어머니를 구명도에 데려오고, 미움의 시선이 차차 걷혀갈 즈음에 닥쳐온 구조조정과 난희. 상관과의 불화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어머니와 사랑하던 사람과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재우는 결국 어머니를 선택하고 말았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야 하는 조건만 있는 사랑보다는 조건 없는 사랑을 택한 것이다. 재우나 나나 왜 겉만 보고 판단을 해왔을까. 부모의 사랑이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한 나머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임을 '등대지기' 는 시사하고 있었다. 그 동안의 증오는 자기 혼자만의 발버둥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어머니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협심증의 환자에게 언덕을 오르게 하고, 정신적 안정을 요하는 어머니를 향해 분노하던 아들의 뼈저린 자책.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다면 세상 그 무엇도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리석은 자식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어머니는 머나먼 외딴 섬까지 찾아온 것이리라.
어릴때부터 그토록 사랑했더 난희를 포기하면서까지 붙든 어머니였다. 재우는 이제라도 어머니와 구명도에서 오손도손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그는 떠나야 한다. 등대지기를 떠나보낸 등대. 등대지기의 숨결이, 육체가, 영혼이 담기지 못한 등대는 온전한 모습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등대지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등대불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와도 나에겐 여전히 오늘이 남아있고, 오늘의 몫으로 등대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에 교체하지 못했던 구멍뚫린 유리창 때문에 등대 위에서 그만 번개를 맞고 만다. 그 작은 구멍 때문에 말이다. 교체하도록 지원만 제대로 해주었다면 그런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났다. 죽어가던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때문이었다. 빗물에 적셔 아들의 입술에 물려주던 그 속옷.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을 살리려던 어머니의 안간힘이 고스란히 담긴 그 속옷 때문에 그는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어미니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나는 빗물 젖은 속옷을 재우의 입술에 물려주는 그 대목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평화와 분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것은 어느 쪽을 택해 뒤집어 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재우는 줄곧 분쟁의 소란스러움 속에 있었고, 한순간 동전을 뒤집어놓듯 평화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비록 어머니의 임종이 다가오기 직전이었지만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내가 아직 그렇게 메마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비록 지금까지의 나는 '효도한다' 는 말을 붙일 수도 없을 만큼 불초한 자식이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진정으로 위하고 싶다. 효도하려 노력하고 싶다. 한심스럽게도 나는 지금 이 나이가 될때까지도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학생인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공부라고 생각해왔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부모님께서 미리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주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공부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지금부터,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똑똑하지만 매몰찬 자식보다는, 좀 모자라더라도 변함없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나를 모자라는 사람으로 단정해 버린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년, 결코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다. 사람은 각자의 갈 길이 있다고 했다. 엘리트가 되든, 평범한 사람이 되든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님의 조건없는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손과 발의 고마움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부모의 사랑도 너무 당연해서 또한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원래부터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고 덕분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송스러움을 안고 살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만큼, 때로는 꾸중으로, 때로는 누구에 대한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 곳은 없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용기도 없거니와, 그 꾸중 자체가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거리 자체가 되지 못했다. 결국 내가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곳은 일기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일기 검사가 없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화가 날 때, 우울할 때, 괴로울 때 일기를 써 나가곤 했다. 항상 기분 나쁜 일만 있는 일기였다. 내 성격을 고치려는 생각은 없이, 그저 와신상담의 기분으로 일기에 매달리는 집착이 생겼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그 일기를 보시게 되었다. 물론 그 때의 감정이, 일기를 쓸 당시의 감정과 같을 수 없지만, 일기를 보시고 하시는 어머니의 꾸중에 나는 부끄러움 반, 죄송스러움 반으로, 나는 4년 동안 써 오던 일기를 모두 버리고야 말았다. 며칠 후에 나는 무언가 내게 변화가 될 것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일기를 쓰면서 내가 왜 그랬는지를 돌아보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러한 책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 책은 바로 이 '등대지기' 였다.
내가 읽게 된 소설 '등대지기' 는 내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룬 글이었다. 메마른 생활 속에 메말라 가고 있는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환기시켜 준 책이라고나 할까.. 참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준 이 책은, '효'라는 사상도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 않은 내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것이었다. 처음에 감상문을 쓰려 할 적에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쓴 감상 역시 메마르고 와닿는 느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망설이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국 펜을 들게 된 것은, 응어리진 내 속마음이 담긴 일기를 보시고도 이내 용서하시고 또 다시 나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다. 기분 나쁜 일들의 뒷풀이만 씌여 있는 일기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는 또 한번 나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나를 사랑하실 테지만, 정작 내가 품은 사랑은 기복이 심했다. 내가 품은 마음 속의 사랑. 나는 성적과 비례한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내 멋대로의 추측, 그것은 '등대지기' 를 읽은 후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등대지기' 의 주인공 재우, 그와 나는 어쩌면 비슷한 처지인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잇었다는 점.. 다른 점이 있다면, 재우는 늦게나마 모성애를 깨달은 것이다. 재우의 어머니께서 구명도에 오시기 전까지 재우와 나는 어머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편견을 더 중시해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오히려 등대지기의 형 명우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적인 인물의 표상, 명우. 그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지만, 정작 그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동생에게 떠맡기고야 만다.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 모든 신경을 다 쓰실 때, 그 때의 동생도 아마 재우의 심정과 같았으리라. 형 때문에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서 맏이와 달리 필요한 것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동생의 태도와 행동을 보며 새삼스럽게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얼굴을 들 면목도 없는 인간이다.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버림받은 영혼, 재우를 받아들여 준 것은 등대였다. 8년동안 등대지기로 일한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배웠고, 어느새 등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면하게 된 형. 그렇게도 잘 되길 기원하며 키운 명우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자기도 증오했던 어머니를 구명도에 데려오고, 미움의 시선이 차차 걷혀갈 즈음에 닥쳐온 구조조정과 난희. 상관과의 불화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어머니와 사랑하던 사람과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재우는 결국 어머니를 선택하고 말았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야 하는 조건만 있는 사랑보다는 조건 없는 사랑을 택한 것이다. 재우나 나나 왜 겉만 보고 판단을 해왔을까. 부모의 사랑이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한 나머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임을 '등대지기' 는 시사하고 있었다. 그 동안의 증오는 자기 혼자만의 발버둥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어머니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협심증의 환자에게 언덕을 오르게 하고, 정신적 안정을 요하는 어머니를 향해 분노하던 아들의 뼈저린 자책.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다면 세상 그 무엇도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리석은 자식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어머니는 머나먼 외딴 섬까지 찾아온 것이리라.
어릴때부터 그토록 사랑했더 난희를 포기하면서까지 붙든 어머니였다. 재우는 이제라도 어머니와 구명도에서 오손도손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그는 떠나야 한다. 등대지기를 떠나보낸 등대. 등대지기의 숨결이, 육체가, 영혼이 담기지 못한 등대는 온전한 모습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등대지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등대불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와도 나에겐 여전히 오늘이 남아있고, 오늘의 몫으로 등대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에 교체하지 못했던 구멍뚫린 유리창 때문에 등대 위에서 그만 번개를 맞고 만다. 그 작은 구멍 때문에 말이다. 교체하도록 지원만 제대로 해주었다면 그런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났다. 죽어가던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때문이었다. 빗물에 적셔 아들의 입술에 물려주던 그 속옷.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을 살리려던 어머니의 안간힘이 고스란히 담긴 그 속옷 때문에 그는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어미니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나는 빗물 젖은 속옷을 재우의 입술에 물려주는 그 대목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평화와 분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것은 어느 쪽을 택해 뒤집어 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재우는 줄곧 분쟁의 소란스러움 속에 있었고, 한순간 동전을 뒤집어놓듯 평화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비록 어머니의 임종이 다가오기 직전이었지만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내가 아직 그렇게 메마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비록 지금까지의 나는 '효도한다' 는 말을 붙일 수도 없을 만큼 불초한 자식이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진정으로 위하고 싶다. 효도하려 노력하고 싶다. 한심스럽게도 나는 지금 이 나이가 될때까지도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학생인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공부라고 생각해왔다.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부모님께서 미리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주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공부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지금부터,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똑똑하지만 매몰찬 자식보다는, 좀 모자라더라도 변함없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나를 모자라는 사람으로 단정해 버린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년, 결코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다. 사람은 각자의 갈 길이 있다고 했다. 엘리트가 되든, 평범한 사람이 되든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님의 조건없는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