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d #47
categorized under 추억 만들기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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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어떤 학생이 수시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잠시 그에 대한 부러움이나 약간의 질투 따위를 쏟아낸 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또 집에서 어머니께 아는분의 딸이 수시에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나니, 앞서의 소식까지 한꺼번에 내 귀에 맴돌면서 더이상 쉽게 흘려버리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신 아들의 공부에 대한 한이 너무도 뿌리깊은 것이다 보니, 마치 하소연과 같은 대화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계속되면서 마치 공부를 부모를 위해서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지극해서 내게 거는 기대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내가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해드릴 수 있는 말은 그저 '지켜봐 달라' 뿐이었다.
수시는 대체로 운이다. 운으로 붙었다면 그 친구분이 자랑을 하실 만도 하다. 다만 그 소리를 듣는 분이 우리 어머니였던 것이 가슴 아프다. 그' 운' 을 맛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내신' 이라는 조건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들. 그 조건마저 불충분한 아들은 이제 더이상 운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정시를 노릴 뿐.
하지만 어머니의 심정이 나와 같을리 없다. 자기 아들도 가장 빠른 길로 자랑스럽게 SKY 테잎을 딱 끊고 들어가고 번듯한 직업을 얻어서, 입에 담아두기엔 너무 자랑스러워서 거침없이 남들 앞에서 아들자랑을 하고픈 이시대의 평범한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들은 너무도 잘 알지만, 너무도 잘 알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솔직히 말해, 이루지 못할 소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나는 나. 나는 그들에 비해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의 자랑(사실은 그의 부모의 자랑)을 어떻게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려 한다. 한번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자랑스러운 주인공이 수시에 붙든 말든, 결국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왜 내가 그로인해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수시에 대한 아픔은 이미 고3때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지금 내게 그런 소식을 들려주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 의지상실, 자괴감 등을 한 상에 차려다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연 내가 그보다 머리 잘 안돌아가고 산만해서 수시 쓸 기회도 없이 정시봤는데 그것도 실패해서 다시 정시보는 비운의 재수생이란 말인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재수하는 과정마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남보다 늦은 위치에 서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성공해 보겠다고 노력하는 수험생이다.
나는 정말로 좋지 않은 두뇌와 산만한 정신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큰 그릇이라서 너무 늦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를테면 '초 대기 초 만성' 이라고나 할까.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두뇌와, 정신 못차린 정신(?)이라.. 하지만 나는 나의 이러한 조건을 미워하지 않으련다.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훨씬 나은 것은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발전이 조금 느리고, 그 와중에 수능을 맞이했을 뿐이다.
나는 내 능력에 맞춰 갈 수 있는 길, 그 중에 최선의 길로 걸어갈 뿐이다. 갑자기 어느날 공부에 도가 튼다든지 하는 변화는, 적어도 남은 90여일 안에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런 환상보다는, 내게 주어진 조건에서 그래도 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조건, 나의 두뇌와 정신 때문에 명석한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기에, 내 자신은 아직 너무 어리다. '재수' 라고 하는것도 결국은 내 그릇을 채우는 하나의 소중한 기간이다. 처음으로 통과할 관문이 어떤 대학문이든 그것은 상관없다. 나는 초대기만성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내 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나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 있던 그들에게 무릎꿇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유리하던 그들이 내게 밀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은 내게, '누가 어디에 붙었다' 는 말보다는 '넌 할 수 있다' 는 사소한 격려가 더욱 소중하다.
오늘도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는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계속되면서 마치 공부를 부모를 위해서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지극해서 내게 거는 기대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내가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해드릴 수 있는 말은 그저 '지켜봐 달라' 뿐이었다.
수시는 대체로 운이다. 운으로 붙었다면 그 친구분이 자랑을 하실 만도 하다. 다만 그 소리를 듣는 분이 우리 어머니였던 것이 가슴 아프다. 그' 운' 을 맛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내신' 이라는 조건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들. 그 조건마저 불충분한 아들은 이제 더이상 운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정시를 노릴 뿐.
하지만 어머니의 심정이 나와 같을리 없다. 자기 아들도 가장 빠른 길로 자랑스럽게 SKY 테잎을 딱 끊고 들어가고 번듯한 직업을 얻어서, 입에 담아두기엔 너무 자랑스러워서 거침없이 남들 앞에서 아들자랑을 하고픈 이시대의 평범한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들은 너무도 잘 알지만, 너무도 잘 알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솔직히 말해, 이루지 못할 소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나는 나. 나는 그들에 비해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의 자랑(사실은 그의 부모의 자랑)을 어떻게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려 한다. 한번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자랑스러운 주인공이 수시에 붙든 말든, 결국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왜 내가 그로인해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수시에 대한 아픔은 이미 고3때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지금 내게 그런 소식을 들려주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 의지상실, 자괴감 등을 한 상에 차려다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연 내가 그보다 머리 잘 안돌아가고 산만해서 수시 쓸 기회도 없이 정시봤는데 그것도 실패해서 다시 정시보는 비운의 재수생이란 말인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재수하는 과정마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남보다 늦은 위치에 서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성공해 보겠다고 노력하는 수험생이다.
나는 정말로 좋지 않은 두뇌와 산만한 정신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큰 그릇이라서 너무 늦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를테면 '초 대기 초 만성' 이라고나 할까.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두뇌와, 정신 못차린 정신(?)이라.. 하지만 나는 나의 이러한 조건을 미워하지 않으련다. 과거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훨씬 나은 것은 분명하다. 나는 천천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발전이 조금 느리고, 그 와중에 수능을 맞이했을 뿐이다.
나는 내 능력에 맞춰 갈 수 있는 길, 그 중에 최선의 길로 걸어갈 뿐이다. 갑자기 어느날 공부에 도가 튼다든지 하는 변화는, 적어도 남은 90여일 안에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런 환상보다는, 내게 주어진 조건에서 그래도 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조건, 나의 두뇌와 정신 때문에 명석한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기에, 내 자신은 아직 너무 어리다. '재수' 라고 하는것도 결국은 내 그릇을 채우는 하나의 소중한 기간이다. 처음으로 통과할 관문이 어떤 대학문이든 그것은 상관없다. 나는 초대기만성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내 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나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 있던 그들에게 무릎꿇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유리하던 그들이 내게 밀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은 내게, '누가 어디에 붙었다' 는 말보다는 '넌 할 수 있다' 는 사소한 격려가 더욱 소중하다.
오늘도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