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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동기 중에 무술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마침 이화여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 가는 길이라면 함께 답사도 해보고 가는게 어떻겠는가 싶어 그에게 연락을 해서 덕수궁 답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단체 입장료는 800원, 일반 입장료는 1000원이었다. 툴툴거리는 녀석에게 200원을 건네주고 들어간 곳에는, 경복궁 답사때와 마찬가지로 궁궐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우리궁궐지킴이가 있었다.
 
사각형으로 딱딱 나누어지는 구획을 갖춘 경복궁과는 달리, 덕수궁은 그때그때 편의에 맞춰 지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본래 월산대군의 집과 민가들을 합하여 행궁은 것이 그 시초로, 이후 광해군 시기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아관파천 시기의 역사로 궁궐지킴이의 설명은 이어졌다. 덕수궁의 근처에 외국 공사관이 많았던 것 만으로도 이 궁궐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눈에 들어올만도 하다. 그 눈에 들어오는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석조전인데, 익숙한 고래등 기와를 진 전각들 사이에 들어선 흰색 석조건물이 이색적이다. 전통적인 전각 옆에 서 있어 더욱 대조적이며, 열강들이 자행한 침탈의 역사라는 것을 떠올리니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궁궐지킴이는 석어당과 즉조당이 덕수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석어당은 선조가 머물렀던 곳이자,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면서, 광해군의 죄를 물은 장소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즉조당의 의미는 임금이 즉위한 곳이라고 하는데,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조가 어려운 시기 시어소로써 운영했던 이곳을, 역대 국왕들은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하는 장소로 이용했던 것 같다. 과연 고종은 선조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이 그때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시기는 아닙니까’ 하고 되묻지는 않았을까.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수대 석조전 옆에 있는 또 하나의 돌건물. 답사가 끝나고 파한 이후, 함께 온 친구와 나는 한참동안 이 주변을 돌면서 또한 나름대로 ‘어려웠던 시기’ 를 회상해 보았다. 어릴적엔 고대사에 흥미가 몹시 많았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실관계가 명확한 근현대사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여전히 교수님께서 호명하시며 질문을 하시면 제대로 대답은 하지 못하는 초짜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근현대사 쪽으로 공부를 계속 해 나갈 생각인데 이번 과목을 통해 얻은 바가 많다. 그리고 나는 옛터지기&탁본 이라는 학회에 가입한 상태여서 미술사에 또한 관심이 많은데, 이번 과목을 통해서 두 번의 답사를 접하고 나서 근현대사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미술사에 대한 흥미를 결합시킬 연결고리를 찾은 것도 같다.
 
우리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이름난 돌담길을 걸으며 ‘이대로 답사를 마칠 수는 없다’ 며 의견을 모았다. 가까이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을 둘러본 뒤, 답사와 연관성이 깊지는 않지만 근처에서 구경할 수 있는 경희궁, 경찰박물관 등을 모두 관람한 뒤, 이화여대에 들러 친구네 동아리의 공연 감상을 한 뒤 저녁에야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덕수궁에서 이화여대까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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