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느껴지는 계단
흐물거리는 경계선들은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돌바닥의 작은 결정 하나하나마저
알알이 요동치고 있다
흘러 내려가는 모양새가 직각인지 둥근 것인지

공간감각의 익숙함 혹은
계단을 걷기 위해 설계된 상투적인 걸음걸이로
발걸음에게 모든것을 내맡기고
플랫폼으로 무사히 걸어 내려왔다
굴러 떨어지지 말라고 만들어진
쇳덩이를 굴러 떨어질듯 짚고서는

고개가 무거운 까닭은
짚은 이 물체가 차가운 까닭일까
아니면 내가 차가운 까닭일까
이내 이런저런 생각들을 철로에 내동댕이치고
어색하게 얹은 팔 위에 지친 이마를 내려놓았다
쇳덩이가 서서히 내 온기를 받아들일때쯤
또다른 거대한 쇳덩이가 내게로 달려들어온다

뒷굽을 끌며 화살표 블럭 위에 섰다
바로 맞은편에 어떤 여자가 나를 보고 서 있다
아가씨, 철바퀴가 철로를 핥으며 달려오고 있어요
미세한 철가루가 먼지들과 함께 날아오고 있어요
여자는 대답이 없다

지하철의 무수히 많은 유리창은
때로는 투과하고 때로는 반사하여
때로는 당신을 비추고 때로는 나를 비추고
당신과 내가 마주 선 플랫폼 위에서

당신과 나는,
흘러가는 유리창의 크기 만큼씩
나는 당신이 되고 당신은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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