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d #176
categorized under 리포트 공작소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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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경복궁 답사를 간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 그리고 내가 경복궁을 거닐었던 시절은, 강산이 한번 바뀌고 또 반쯤 바뀔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써도 통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나 소소한 어느날 일상의 반나절 쯤 이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경복궁을 찾아가 눈앞에 두고서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지난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오늘의 이 구름 낀 날씨만큼이나 흐릿한 산책인가 보다.
근정전에서 바라본 광화문은 비뚤어져 있었다. 인솔자의 설명을 수첩에 받아적으면서 속으로 아마 저만치 되는 거리에 어머니 친구분께서 카메라를 들고 서 계셨을 것이고, 나는 여기쯤에서 근정전을 뒤로 하고 서 계신 어머니 곁에 손을 잡고 있었을 것이란 상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정일품이 새겨진 돌을 품고 나름 해맑은 표정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웃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 하는 생각들이 저 광화문처럼 흐트러져, 정확한 역추적일 수야 없을테지만, 비어버린 공간에 기억을 다시 채색하는 과정은 퍽이나 유쾌한 일이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낯익은 이야기들이 다시한번 인솔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인솔자는 때때로 우리들을 상대로 두 건물의 차이점이나 해시계 읽는 법 등의 퀴즈를 내기도 했다. 사정전과 만춘전의 차이는 창문에도, 기둥에도, 아궁이에도, 통풍구에도 있었다. 수정전 곁에 깔린 잔디는 궁궐을 뜯어간 뒤에 남긴 조경이라고 했다. 이는 일종의 무덤인 셈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궁궐은 다시금 목재가 되어 일본의 절 따위를 짓는 건축재료로 쓰였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다. 물론 어릴적의 내가 뛰어놀고 갔을 저 잔디는 더없이 즐거운 놀이터에 불과했을 것이다. 인솔자는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잔디밭 있다고 놀기 좋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민족의 아픔을 한번쯤 되새겨보자’ 고 했다. 그래, 이곳에도 큼직한 전각들이 빼곡했을 것이다. 촘촘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웅장했을 궁궐은 이렇게 듬성듬성 사라지고, 이제는 우리의 시야에 무덤 위에 난 잔디처럼, 한가로운 유원지 같은 느낌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향원정)
초록색 물 속을 한가로이 헤엄치는 잉어들 사이로 경회루가 비쳤다. 이와 유사한 풍류는 향원정에도 있었다. 경회루와 향원정의 느낌은 사뭇 달랐으나, 언뜻 보기에 이 두 건물의 주변부를 배회하는 잉어들의 모습은 같아 보였다. 교태전을 지나면서 돌담은 붉은 빛을 띄는 화려한 벽돌들로 바뀌어 있었고, 비밀의 화원같은 조용한 뒤뜰이 나타났다. 이곳 아미산에서 중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미산)
공사중인 건천궁은 우리에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나는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여기에 또 다시 걸음을 딛게 될까. 저녁식사가 끝날 때 즈음해서 박석이나 드므 등의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드리다가 문득 떠올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경복궁에 다시 찾아가야겠다고. 오늘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만큼이나 나도 훌륭하게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추억과 함께라면. 그리고 경복궁 안에서 어머니께 그날의 소소한 산책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