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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zed under 리포트 공작소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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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와 동서문화의 교류 : 영상 시청 감상문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책과 정지된 화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가져다 줄 때가 많다. 금요일에 감상한 ‘신실크로드 - 되살아는 천년의 기적’ 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색감에 반하는 강렬한 그림들을 배치시킴으로써 우리의 눈을 자극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석가의 전생 그림 15가지를 담았다는 위구르 불교미술의 걸작 서원도이다.
영상은 투르판 분지, 투르판시를 거쳐 베제크리크 천불동을 담고 있는데, 특히 80여개의 동굴 중 제 15호굴에 주목한다. 마치 거실에 깔아놓는 카페트의 문양과도 닮은, 이른바 ‘보상화문’ 은 페르시아풍의 실크로드 문양이다. 그리고 이곳에 가득 담겼을 ‘서원도’ 는 서쪽의 간다라미술과 동쪽의 중화문염이 결합된 당시 이 지방 미술의 꽃이었을 것이다.
세계 열강 탐험대는 이 지역을 탐사하면서 각각의 부분을 벗겨내고 도굴해갔다. 스벤헤딘, 오레르스타인, 르코크, 오르덴부르크, 오타시 등의 탐험대는 서원도를 모자이크처럼 부분적으로 떼어내 갔다. 르코크는 이 그림들을 독일로 가져가는 것이 바로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라 믿었다 하는데, 결국 이러한 왜곡된 믿음들의 총체가 현재의 각국의 유럽 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국주의 시대에 수없이 약탈된 문화재들은 아무 말 없이 타국의 박물관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서원도는 2차 세계대전시 파괴되어 현재는 인쇄물만 남아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류코크 대학에서는 서원도에 대해 디지털 복원작업을 실시하였다. 부처와 대상행렬의 주인의 복원작업을 잠시 살펴보고, 영상은 다시 천산산맥과 서위구르의 옛 수도 고창고성으로 넘어가고, 금의를 두른 위구르왕이 등장하는데, 서위구르왕국은 불교, 마니교 등 6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왕국이었다고 하니, 여러민족과 종교가 혼합되어 개방적인 통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밖에 연등불수기 전체 모습을 디지털 복원하는 장면을 감상했고 뒤이어 서원도 전체가 복원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화면 가득 채워진 서원도는 비록 디지털 복원이라 할지라도 당시의 장엄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의 위구르왕은 이 거대한 그림들 사이를 거닐며 왕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을 것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된 이 훌륭한 걸작들을 완벽히 복원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디지털에 의한 복원은 유사한 완성물을 찾아가는 과정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디지털 복원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유사함을 찾아가는 방법론과 그 성과물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원도가 그려질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지금의 후손들까지, 그들은 이 지역에서 유사한 생활양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풍속은 상인 모습, 위구르인의 얼굴, 낙타, 강을 건너는 모습, 대상행렬의 우두머리 그림 등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들이 당시의 사람들과 같을 수 없지만, 마치 디지털에 의해 복원된 서원도처럼, 과거의 영화를 품은채 노래와 춤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나 위구르왕이 바쳤던 안녕과 번영의 기원은 변함없이 남아있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책과 정지된 화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가져다 줄 때가 많다. 금요일에 감상한 ‘신실크로드 - 되살아는 천년의 기적’ 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색감에 반하는 강렬한 그림들을 배치시킴으로써 우리의 눈을 자극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석가의 전생 그림 15가지를 담았다는 위구르 불교미술의 걸작 서원도이다.
영상은 투르판 분지, 투르판시를 거쳐 베제크리크 천불동을 담고 있는데, 특히 80여개의 동굴 중 제 15호굴에 주목한다. 마치 거실에 깔아놓는 카페트의 문양과도 닮은, 이른바 ‘보상화문’ 은 페르시아풍의 실크로드 문양이다. 그리고 이곳에 가득 담겼을 ‘서원도’ 는 서쪽의 간다라미술과 동쪽의 중화문염이 결합된 당시 이 지방 미술의 꽃이었을 것이다.
세계 열강 탐험대는 이 지역을 탐사하면서 각각의 부분을 벗겨내고 도굴해갔다. 스벤헤딘, 오레르스타인, 르코크, 오르덴부르크, 오타시 등의 탐험대는 서원도를 모자이크처럼 부분적으로 떼어내 갔다. 르코크는 이 그림들을 독일로 가져가는 것이 바로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라 믿었다 하는데, 결국 이러한 왜곡된 믿음들의 총체가 현재의 각국의 유럽 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국주의 시대에 수없이 약탈된 문화재들은 아무 말 없이 타국의 박물관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서원도는 2차 세계대전시 파괴되어 현재는 인쇄물만 남아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류코크 대학에서는 서원도에 대해 디지털 복원작업을 실시하였다. 부처와 대상행렬의 주인의 복원작업을 잠시 살펴보고, 영상은 다시 천산산맥과 서위구르의 옛 수도 고창고성으로 넘어가고, 금의를 두른 위구르왕이 등장하는데, 서위구르왕국은 불교, 마니교 등 6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왕국이었다고 하니, 여러민족과 종교가 혼합되어 개방적인 통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밖에 연등불수기 전체 모습을 디지털 복원하는 장면을 감상했고 뒤이어 서원도 전체가 복원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화면 가득 채워진 서원도는 비록 디지털 복원이라 할지라도 당시의 장엄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의 위구르왕은 이 거대한 그림들 사이를 거닐며 왕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을 것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된 이 훌륭한 걸작들을 완벽히 복원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디지털에 의한 복원은 유사한 완성물을 찾아가는 과정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디지털 복원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유사함을 찾아가는 방법론과 그 성과물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원도가 그려질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지금의 후손들까지, 그들은 이 지역에서 유사한 생활양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풍속은 상인 모습, 위구르인의 얼굴, 낙타, 강을 건너는 모습, 대상행렬의 우두머리 그림 등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들이 당시의 사람들과 같을 수 없지만, 마치 디지털에 의해 복원된 서원도처럼, 과거의 영화를 품은채 노래와 춤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나 위구르왕이 바쳤던 안녕과 번영의 기원은 변함없이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