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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zed under 추억 만들기 & written by 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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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윤이 친구네 공연 / 2006 추계 씨알지 투고
손의 움직임은 곧 힘이다. 각자의 손은 각자의 의미를 가지며, 또한 각자의 힘을 각자의 방식으로 쏟아낸다. 그 하나하나의 힘이 모여 공연을 완성한다. 하지만 그 힘들은 보이지 않기에, 디카 액정 안에 담을 수 없는 공연 외적인 것들에 대하여,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지극히 부분적인 감상에 불과하다. 어릴적의 상상력이 거세되어버린 지금, 두뇌로부터 쏟아져나오는 복잡다난한 생각의 흐름은,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고 쓸데없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방해꾼일 뿐이라서, 글솜씨는 심지어 액정 안에 담긴 소소한 왜곡 후의 결정만도 못하다.
삶이란 예기치 않게 고단해지는 법도 있다. 그 고단함의 원류가 무거운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회피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예전의 나는 아마도 그 방법을 알지 못했었나보다. 나는 그동안 익숙함에 익숙해서 심지어는 권태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당신들의 손에 이끌려, 이제는 온통 보이는 것이란 새로운 것들로 가득해서, 권태에 찌들어버린 나의 눈을 밝히려는 노력은, 어느새 흥미진진한 탐험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고막에다 북채를 두들기는것 같은 느낌, 나의 가슴은 예쁜 보컬의 목소리처럼, 퍽이나 오랜만에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보낸 대학들도 하나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입학이란 늘 설레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입학의 반복은 어느새 익숙함을 넘어 권태로움에 이르렀다. 근원적인 권태는 내 자신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학교에 그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었건만, 스스로 그 본질을 치유할 수 없었던 나는 그 권태를 즐기는 차선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난 늦깎이 인생이 되었다. 늦은만큼 가슴에 박힌 삶의 굴곡을 의욕적으로 허물기 시작했다. 단지 늦었다는 이유로,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많은 대접을 받길 원치않는 대학 안에서, 나는 내가 가진 인생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수없이 닻을 내던졌다.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경쾌한 기타소리와 같이, 나의 닻이 해저에 닿는 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닻을 내던지는 것은 정신의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배 위에서는 해저에 닿는 충격음을 들을 수 없기에, 결국에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와도 같았다. 인생이 그립고, 인간이 그립고, 당신들이 그리웠다. 그리움은 늘 아쉬움을 낳았다. 그리고 아쉬움은 그리움에 다시 날 파묻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적응해야만 했다. 짧고도 짧은 인생의 황금기를 죽어지내기엔 여태 기른 머리카락이 아쉬울 정도였으니까. 사학과 동기 종윤이의 친구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기타리스트이다. 기타를 잡은 손, 베이스를 잡은 손, 건반위에 놓인 손, 드럼채를 잡은 손, 각자의 노력이 같을 수는 없으나, 그 본질은 결국 같다. 내가 보고 화면에 담는 것들은 너무도 작아서 아쉬움을 자아낼 뿐이다. 내 손에서 나오는 글이 그림처럼 그려지면 다행이겠지만, 그 그림이 어떤 상황에서든 유사한 그림이라면, 그것은 진부함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노력은 기타리스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 있지만, 창조를 갈망하는 노선은 같다.
바로 몇초전에 지나간 보컬의 목소리이건만, 동영상 안의 노래는 이미 나의 감성과는 단절된듯한 느낌이다. 하물며 바로 몇초전에 지나간 기타리스트의 손에 쓸려나간 현의 미세한 떨림을, 고작 이 자그마한 기계 따위가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추억만들기. 추억이란 사소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익숙함이란 때로 권태를 낳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추억이라는 것은 늘 흐뭇함을 낳는다. 내가 사소한 것을 잘 기억하는 까닭은 당신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또한 추억하기 위해서다. 추억 속에 담긴 당신을 찾으려 함이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추억이란 무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형을 위한 것이다.
우물 안에 담긴 학과의 세상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그러나 이 축소판을 확대해 살펴보면 어찌하여 온전한 세계가 보여지 않는것일까. 가사를 온전히 외우지 못한 보컬이 한순간 우물거리던 것처럼, 불빛은 또 한차례 내 눈을 간지르고 지나갔다. Let It Be. 흔들리는 가사 속에서도 이 가사만은 온전했다. 그래, 내버려두자. 그리고 그렇기에 아마추어리즘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늘상 어색함을 위로해주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을 충분히 억제하고도 남는 열정의 이심전심 때문이었다. 그들의 용기와 미래에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