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왔다'

어머니께서 황급히 깨우셔서 일어났다.

막상 전화를 받고보니 누구인지 쉬이 알려주지 않는 상대방. 누굴까? 누굴까? 저음으로 깔린 목소리.. 졸린 와중에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옛 친구일까, 옥션 구매자인가, 아는 사람이기는 할까, 어투로 보아서는 나보다 나이가 위인 것 같은데, 학점 B를 A+로 바꿔주시겠다는 교수님인가?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아~~ 병곤이형!!'

얼마만에 걸려온 전화인가! 작년 11월의 그 조용조용한 목소리는 어느새 굵직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 목소리의 느낌이 너무 달라서, 사촌형인지 쉽사리 알아채지 못했다.

벌써 입대한지 1년이 지나 상병이 된 형. 우리집으로 편지를 부쳤다고 한다. 작년에 내가 보낸 편지를 읽은 형, 그리고 1년만에 돌아올 형의 답장에 대해 자못 기대가 된다. 앞으로 또 며칠간은 편지함 확인을 꼭 해야겠네!

그래, 나도 할머니댁에서 종종 마시게 되는 정종 대신, 술집에서 형이랑 마주보고 앉아 술 한잔 하고 싶다. 정말 형 얼굴 본지도 꽤 오래됐다. 10월쯤 휴가 나오면 그때쯤 형이랑 상봉할 수 있겠군.

형은 나의 절친한 사촌이자,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꽤 오래 붙어있기도 했고, 꽤 오래 떨어져 있기도 했다. 할머니댁은 우리에게 '만남의 장소' 였다. 나는 그곳에서 형을 기다리고, 형도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이젠 굳이 그곳이 우리 접선지의 전부일 필요는 없겠지. 응, 그래 이제 나도 마실줄 알아!

내가 형에게서 전화가 왔던 것이라고 하니까 어머니께서도 그제야 웃으신다. 어머니께서도 누군지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여튼 형의 연극에 모자가 모두 깜빡 속았다. 얼른 우편물 확인하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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