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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정신을 놓아도 순식간에 필름이 끊길 정도로 요즘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방바닥에는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프린트를 뒤적거리다가, 다시 인터넷 세상을 활보하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쪽지로 시험내용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때론 누군가를 깨우기도 하고, 혼자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마음 한구석에다가 그간 쌓여있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들을 억지로 꾸역꾸역 다 밀어넣고, 베란다에서 내다본 산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야 가까스로 잠을 청했다.

'읽기와 쓰기' 시험은 10시 25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나는 아주 정확히도 10시 25분에 일어났다. 부리나케 집에서 뛰쳐나와 엘리베이터에서 옷을 챙겨입고 도로변까지 뛰쳐나오자, 용케도 내 앞에서 멈춘 택시가 나를 손쉽게 학교에 대려다 주었다. 5천원을 30분과 바꾼것은 어찌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미친듯이 달려가서 11시에야 교실 문을 열었다. 이미 답안지 뒷면을 작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 답안지를 받아든 나는, 도로에서 교환한 30분과 똑같은 시간, 딱 그만큼의 시간만을 가지고 건성건성 답안지 작성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과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나서 지하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누군가의 문자가 날아왔다.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말라고 - 상투적인 답장을 보냈다. 주가는 또 시퍼런 색으로 물들었다. 추가불입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뇌하다가 그만두었다. 코스트에버리징이고 뭐고 요즘같은 하락장세에서는 그냥 다 헛소리인것만 같다.

다시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아주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지려고 하는구나 - 문자가 날아왔다. 맞는 말이다. 나는 늘 쓸데없이 생각만 많다. 왜 남의 고민에 내가 더 고생하고 심지어는 매몰되고 마는 것일까. 비단 그 일 때문만은 아니라는 답장을 보냈다. 내 고민들, 너희들의 고민들이 너무도 많아서 이제는 받아줄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결국에는 모두 다 내가 똑바로 서지 못해서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방에서 잠시동안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어떠한 가치판단도 유보하고자 했지만,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다면 - 특히 그에게는 - 그것 또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또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살고 싶기도 하다. 나는 그의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결국 몇마디의 부질없는 충고를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학생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뒤 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카드놀이를 했다. 나는 왠지 마음껏 웃을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카드놀이는 정말 재미있었다. 입을 귀에 걸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쉬운 일이기도 하다. 내 굳은 얼굴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종종 어떤 이들은 나의 웃는 얼굴을 두고 눈이 사라졌다고 놀리기도 한다. 그리운 옛날, 사진 속의 내 눈은 커다랗고 똘망똘망하다. 그러나 점차로 성장하는 얼굴 사이에서 내 눈만은 홀로 뒷걸음질을 쳤나 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상대적으로 편협해지고 탁해진 것일까? 그러나 아직도 어릴적의 웃음과 지금의 웃음을 이어주는 끈이 있다면, 웃으면 슬그머니 감기는 모양새, 바로 그것이다. 그 동작처럼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곡선처럼 부드러울 수 있다면, 왠지 내게 아직 남아있었는지도 모를 순수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에는 토고전 관람을 위한 스크린이 마련되어 있었다. 스크린 반대편에서 한참동안 공놀이를 하다가 과방에서 북이랑 돗자리를 들고와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 앉은 진우형의 머리 위엔 뿔모양 머리띠가 빨갛게 반짝였다. 영선이와 현욱이의 북소리가 열기를 더했다. 운동장에 사람들이 가득찰 때쯤 경기가 시작되고, 순식간에 목은 너덜거리다못해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응원의 중심에는 너도 있고 나도 있고 우리모두 있었다. 돌연 모두 일어나서 뛰고 얼싸안고 소리지르기를 두 번, 경기는 승리로 끝났다. '우리가 이겼다!!' 마구마구 소리지르면서 뛰어다녀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모두가 취한것처럼 보였다. 흥분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퍼지고, 몰려다니면서 응원가 부르는 사람들까지.. 사람의 희망은 결국 사람이었다.

과방 앞에서 우리들끼리 한차례 축구를 하고나서, 막차를 타기위해 학교부터 지하철 플랫폼까지 뛰었다. 내방역에서부터 집까지 걷는 길은 한적했다. 육교에 올라 방배역 방면으로 사진 한장, 내방역 방면으로 사진 한장을 찍었다. 육교 앞으로 펼쳐진 도로는 육교 뒤로 펼쳐진 도로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육교에서 한참을 서서, 내가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끈질기게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아무런 결론도 짓지 못한 채 내려오고 말았다. 육교 위에 올라선 나를 반겨주는 것은 다만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저 가로수들과 가로등불들 뿐이었다. 종종 '빵빵~빵빵빵' 경적소리를 내며 차들이 지나갔다. 나는 양 팔을 들어 그들에게 화답했다. 어느새 익숙한 길로 접어들었다. 작년의 애잔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 길이 그날따라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작년처럼 묵묵한 그 길은 내게 아무런 방향도 제시해 주지 않았다. 다만 지난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듯, 그 길을 걸으면 과거의 기억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들이 이제 내게 무슨 소용일까. 내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의 길인데. 걸음의 반복, 길을 따라 집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내게도 주어진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육교에서도, 그 길에서도 아직 나는 나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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