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와 쓰기 과제물 중 일부

(중략)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내게는 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비단 학업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닿아 있었다. 어릴 적 몇 번의 이사를 통해, 학교가 바뀌고 친구가 바뀌었던 것처럼, 그것은 대학에 들어서게 된 재작년부터 또한 마찬가지로 그러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인생이란 늘 새로운 시작의 연속이었다. 나는 늘 깊숙히 땅에 뿌리내린채 세계관을 형성하고 싶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나는 종종 새로운 터전에 이식되어야만 했다. 나는 차츰 지쳐갔고, 이따금 그냥 조용히 잊혀진 채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또 터전이 바뀌게 된다면, 애써 ‘우리’ 라 칭했던 느슨한 끈은 차츰 끊어져 가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사람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에 내 턱이 파랗게 물들고 웃음에 차츰 주름이 맴돌게 될 즈음이면,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남남이 되어가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대학 4년, 군대 2년, 그리고 사회진출. 현재 대학교 1학년에 군 입대를 앞둔 생은 언제나 촉박하다. 연례행사처럼 이어진 지루한 겨울방학과 입학, 나는 늘 신입생답지 않은 모습으로 묵묵히 학교를 거닐었다. 나는 철새처럼 이리저리 떠나갔지만 학교는 교명만 바꾼 채 자꾸만 다가왔다.

몇번의 이사로 몇번씩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뒤에도, 다행히 내게는 친구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제 그들은 더러는 군대에 가고, 더러는 3학년이 되었다. 나는 학업에 욕심을 낸 만큼 시간을 잃었고, 친구들을 잃었다. 남들보다 늦는다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같은 학번 동기들보다 많은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생의 깊이가 결코 그들보다 깊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때때로 나와 나이가 같거나 어린 선배들은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혹시 현역이세요?’ 나는 ‘현역’ 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군대를 떠올렸다. 입대 전의 나의 위치와 제대 후의 그것을 세월이 갈라놓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다시금 우울해졌다.

(중략) 그러던 내가 사학과 춘계답사에 참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졸업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답사는 내게 옅은 각성을 가져다 주었다. 언제나 재확인을 거듭했던 상실의 두려움을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한가닥의 긍정을 보여준 것이다. 수없이 잊혀지고 잊어간다 하더라도, 사람의 희망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이 답사를 기점으로 내 대학생활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략)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정을 주는 일에 너무도 인색했다. 항상 잃을 것을 두려워한 탓이다. 나의 가장 큰 모순은 늘 과거에 얽매이면서도, 유독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미래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소싯적의 우리가 언제 미래의 너와 나를 위해 사귀어 왔던가.  작년의 ‘내 대학생활의 포부와 계획’ 은 학업에만 충실할 것,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계획의 출발점을 ‘사람’ 으로 전환하려 한다. 이제는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든 부대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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