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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이어 이번에는 장마다. 매일같이 궂은 날씨에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자취생활을 한지 어언 1년 하고도 절반 가량 되었다. 힘들고 괴로웠던 날들도 많았지만, 지나가면 대체로 그리운 추억이 된다.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혼자서도 잘해요'라고 할 만큼 잘 지낸다. 하지만 자취 생활 이후로 직면한 의식주 문제는 늘 나를 신경쓰이게 한다. 특히 식료품 문제가 그러한데, 꼬박꼬박 찬장을 꽉꽉 채워놓던 나의 식량은 전쟁같은 시험기간을 지나면서 거진 다 소진되었다. 말끔히 날씨가 개고 늘 이마트 시식코너를 전전하던 돼지가 중국답사에서 돌아오면 함께 장을 봐야겠다고 다이어리에 기록해 놓았다. 마찬가지로 날씨가 개면 여름옷도 몇 벌 새로 장만해야겠다. 월세계약 만료가 다가오는데 1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양호실
저번 주, 작동하고 있는 선풍기를 아무 생각없이 들어서 옮기려다가 왼쪽 네번째 손가락을 크게 다쳤었다. 평소 외상보다는 내상(?)이 더 잦은 나로서는 집에 내복약은 많이 있었음에도 그 흔한 연고 하나 집에 구비해 두고 있지 않았다. 뚝뚝 흐르는 피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수돗물에 상처부위를 씻고 집을 나섰다. 야채 손질을 배우던 취사병 생활 초반에 나는 퍽이나 자주 손가락을 썰곤(!) 했다. 의무병들과 친했던 이유도 사실 나의 부주의에 기인한 바가 컸다. 손을 다치면 으레 의무대로 갔던 것도 습관이 되었는지, 손가락의 상처를 보자마자 의무대를 떠올리고 연상작용의 연장선상에서 양호실을 떠올렸다. 지천에 널린 것이 병원과 약국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 양호실로 갔다. 과연 의무대랑 양호실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한동안 한 손으로 샤워를 하고 설겆이를 하면서, 그 때마다 의무대 친구들을 떠올렸다. 물이 닿지 않게 하라는 그들의 조언을 전역하고서야 지키게 되었다. 당시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항상 물이 필요한 취사장 일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휴가
동생의 긴 휴가로 인해 모처럼 형제간의 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연예인 스케줄을 방불케하는 그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형제간에 술한잔 기울일 시간이 있었고, 이따금 비오는 오후 분식점의 김밥과 떡볶이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다. 다시 그를 부대로 돌려보내며 그가 전역하기 전까지 보다 좋은 거처를 마련하고, 보다 멋진 형으로 거듭나길 다짐했다. 부모님께서 일로 인해 지방으로 내려가시고, 서울에 의지할 사람은 형제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통감했던 둘의 술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힘들었던 20대 시절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형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꼭 같이 살고 싶다'며, '함께 동고동락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 형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괜시리 울컥했던 밤, 나는 덤덤히 '돈 많이 벌어서 내년까지 방 두개짜리 집을 구해보마' 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우리 형제가 함께 살을 맞대고 지낸 시간보다 각자의 삶을 찾아 떨어져 지낼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끼니
쌀을 올려놓지 않고 잠이 든 것을 후회했다. 아침마다 왜 그리 밥을 차려 먹기가 귀찮은지, 혼자 지낸지가 제법 오래 되었음에도 끼니 때마다 매번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던 밥상이 떠오른다. 아무리 내가 말썽을 부려도 끼니 때가 되면 늘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는, 당신 또한 피로하고 번거로울텐데도 불구하고 나와 동생의 반찬투정을 적극 반영하셨다. 나와 동생은 식성도 달라서 어머니는 매번 고기든 나물이든 국이든 찌개든 늘 두배로 음식을 차려야 했음에도 늘 정성껏 삼시세끼 맛있는 밥과 반찬을 준비해 주셨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나는 어머니의 정성스런 밥상이 그립다. 지금의 나는 아침은 차려먹기 귀찮아서 거르고, 자꾸만 인스턴트를 꺼내먹게 되고, 국이나 찌개없인 밥도 먹지 않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이제는 국물없는 식사가 익숙하다. 오늘도 역시 잠에서 깨자마자 무엇을 먹을 것인지 한참동안 고민을 했다. 의식주가 윤택하지 않은 지금의 내게 가장 큰 고민은 항상 '끼니'이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학생식당을 떠올리고는 집을 나섰다.
득점기계가 되다
모처럼의 이른 등교길(12시-_-..)은 무척이나 여유롭다. 계절학기 수업은 3시에나 있는고로 도서관에서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일기를 쓸 시간도 있다. 후배 공룡과 끼니를 때우고 도서관에 들어섰다. 쾌적하다! 시험기간의 중압감으로 가득찬 무거운 공기 냄새가 더이상 나지 않아 좋았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2열람실 87번 바로 이 자리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공부를 했었다. 작년 평점 4.5는 나를 학기 내내 무겁게 짓눌렀다. 잘해봐야 본전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놀랍지만 나는 수성에 성공했다. 이번 학기도 4.5.. 나는 결국 3학년의 두 학기를 전부 최고의 학점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번 학기 최고의 다크호스였던 의악은 한국현대사 학점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올A+에 산술점수마저 98점 동점이었다. 교학상장은 과연 서로를 최고의 학우이자 라이벌로 만들어 놓는가 보다. 결국 한국현대사가 승패를 갈랐지만, 마지막까지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그의 선전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오늘부로 좌철이 말한 '사학과 최고의 사기캐릭=이성복' 설을 인정하기로 했다. 역대 최고의 경쟁 상대들이 전부 뛰어든 위기의 2011년, 동양사강독을 비롯해 어느 과목 하나도 만만하거나 쉬운 과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사히 극복해 낼 줄이야. 이쯤에서 나도 한번 외쳐줘야겠다. 극뽀옥~!! 의악!!
내가 언제 '사학과 최고의 사기캐릭=이성복'이라고 말했어, '사학과 최고의 악어의 눈물=오복의 징징'이랬지.
그리고 의악이 한현에서 패했다고 완전히 패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를 오와 복은 하나, 즉 오복 동주를 통한 복의 승리와 기쁨은 곧 오의 승리와 기쁨인 것임
게다가 '지금 나는 4학년 1학기라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 있다.;라는 멘트는 왜 안씀. 다음 학기를 걱정하지 아니하는 안일한 처사를 보여주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성적표 올릴려면 한국사제문제 성적은 지우고 올리기를 바람!!
복수심에 불타는 후르츠펀치사무라이가 편애의 제왕에게 '원한'을 갖습니다.
인간은 정말 환경에 적응하는 초특급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군요.
하여간 4.5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을 축하합니다.
정말 놀랍네요. ^^;
http://sungbok.com/1204 -> 좌철의 작년 행적에 대한 글입니다. 무려 추천 수가 10이나 됩니다
좌철의 횡포로 인해 성복닷컴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횡포 부탁드립니다
공육 대륙의 초기 복학 시대 이래로 복옹은 그 중심인 동작상도에 복리장성을 쌓고 황제를 자처하며, 문화적 상국 행세를 하고 살았다. 물론, 그의 복왕도에서 비롯한 가정적인 무력과 비효율적 수학량에서 나오는 방대한 지적 재산은 그를 단연 돋보이게 하였고, 복옹을 메인 테마로 한 문화권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복화이다. 이러한 복화 문화권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는 블로그를 통한 생활 문화권이다. 실제로 뛰어난 블로거인 복왕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하여 언론을 형성하고 그 언론에서 나오는 지지를 기반으로 보이지 않는 세력을 휘두른다. 이는 복왕의 추상적 무기로서, 피상적 무기인 복왕도와 비교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 제국도 현재는 강력한 Cyber Sentinel들에 의하여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약화되고 있다.
둘째, 福리주의에 입각한 타문화권 흡수이다. '복화는 이해하지 않는다. 다만, 암기할 뿐이다.'라는 박철민의 복왕 평가에도 드러나듯이, 복옹은 타문화권의 이해에 무척 약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게르만족과 라틴족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문화 이해가 부족하여 현재도 고전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흡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는 18세기 유럽의 철학자 몽테스키외가 '유럽 대륙은 여러 국가의 상호작용으로 문화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반면에, 중국은 주위에 중국을 능가할 수 있는 문화권이 없어,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기가 힘들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복화 문화가 배타적 암기 문화는 아니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 오복문화이다. 복화 문화의 세 번째 특징인, 汚福一體는 복왕의 특정한 타민족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있다. 오 문화의 정확한 표현은 Gloomious Fourdrumtic Samullism으로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의악 문화로 표현된다.(영역표현을 직역하면 '글루미우스 사북적 삼울리즘'이다. - 역자 주 -) 의악 문화는 공육의 선사시대부터 복화 문화의 서북방에 위치한 유목민족 세력이었다. 의악 문화권의 오의악 추장은 항상 녹차를 마시며, 북을 치고, 의악의악 울부짖는다고 박철민의 『汚福夜史』에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박철민은 오의악 추장의 의악의악을 잘못 해석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의악 추장은 부정적인 기운 발산을 소위 'Dark atmosphere aura'로 발산하고 긍정적인 기운 발산을 'Ouak~Ouak~Ouak~Ouak'이라는 톤의 높이 변화가 없는 초저주파의 음파를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오의악 추장의 음파를 해석하여 동질감을 느낀 복왕과 이에 감탄한 오의악 추장의 一體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문화적 상국이었기에 자신과 동등한 문화가 없어 고립감을 느낀 복왕에게 의악 문화의 존재는 '장전쟁 속 아락실'같은 존재였다. 복왕이 오의악 추장의 울부짖음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이래 그 둘은 함께, 험난한 관념적 고난을 넘겨왔다. 대표적으로 '성 문화 담론' 등의 자극적인 관념을 함께 하며 성에 관하여 깨달은 그 둘에게 성현 박철민은 汚福同舟라 칭송하였다. 현재 오의악 추장은 복옹의 복리장성 속에 조공인 오에스 한 상자를 바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나 오의악 추장은 자신의 세력권 확장를 위하여 의악 문화권의 특산물인 맥주를 바치고 복리장성에 들어가고 있다. 고고학 유물인 동작상도 복리장성 침대 유역의 '방구총'은 복화 문화권 속의 의악 문화권의 유입의 증거로 확실시 되고 있다. 물론 재야공육관계사학자 성복은 박철민과 오의악 추장은 물리적 관계의 동반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상무적 칼 문화를 숭상하는 박철민과 프톨레이아적 삽 문화를 숭상하는 오의악 추장의 물리적 활동의 관심사로 인하여 상호간의 교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복화 문화는 복왕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상문문화이기 때문에 박철민과 오의악 추장의 물리적 교류 밖의 존재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옛 성현의 말씀에 '마음이 통하면 몸도 통한다.'라는 말도 있듯이 관념적 교류가 주가 되는 오복 문화가 물리적 교류도 하게 될 날은 멀지 않은듯 싶다.
박철민, 『인류의 어두운 유산의 이해 1편 : 汚福論과 汚福同舟』, 파더텅(2011)의 작가후기에서...
참고문헌
E.H. Car저, 박철민 역, 『What is the O-bok?』, Five fortunes(2011)
Homer. Simpson저, 박철민 역 『글루미우스 대왕 평전』, Darkness(2009)
박철민 저, 『오복관계사의 이해』, 주식회사 오복(2008)
박철민 저, 『육체미학 총서 : 나는 달린다. 그와 함꼐』, 지식파괴사(2007)
Osman truke, 『20대, 일단 갈구고 보는 거임』, 듣보잡(2010)
德天伽降 저, 박철민 역 『세느강에 욕을 싸질르며,오복을 생각한다.』, 眞善組(2011)
2010년 11월 11일 저녁 11시 11분 의악과 복옹의 공조와 융합을 밀약한 종교적 의식 사건. 11자 과자를 먹어야 되는 날에 소외된 자신들의 처지를 함께하기 위하여 합방하였으며, 이 의식에서 고대 근동 지방의 구세주 신앙과 반대되는 말세주 오복의 생산을 약속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밀약을 복옹의 침대에 현대 과학으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체를 싸질러서 역사에 남겼다. 이 애증 섞인 약속의 증표로 인하여 복옹의 은신처는 치외법권과 禁刀禁槍의 성역이 되었다.
2011년 4월 21일 ~ 22일에 걸쳐 오왕과 복왕의 제 1차 오복합작이 이루어졌다. 당시 복옹당 정부의 수장 복왕(20대 후반)은 3월 초부터 정보 조작 집단의 선구주자인 D.C의 공작에 유린당하여 4.18 전투부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시 태세에 들어갔으나, 인트라넷과 가톨릭에 대한 몰이해로 인하여 연이은 패배를 면치 못하고 2010년 1학기의 영광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특히 3G와 와이파이 모두 터지지 않는 310호실(주1)로 인하여 발생한 4.21 동강 사태로 항전 의지를 버리고 복리장선 속에 은거하고 있었다. 한편 의악당 정부의 수장 삼울사북(20대 중반)은 한자와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꿀교양을 모두 독식하며 대장정을 거의 완수하였으나, 갑작스러운 한국 역사관의 습격을 받고 흡연이 가능한 여우래 방으로 잠적을 한 상태였다. 이들의 코마 상태가 과내 등수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을 우려한 박철민(20대 중반)은 4.21 21:00에 그간 표방한 오복타도의 기치를 잠시 포기하고 이 둘을 도서관 지하실로 소환하였다. 이에 그들이 응하여 다시 항전태세를 갖춘 시간은 22:30... 상당히 지연이 된 시간 끝에 합작을 이룬 원인은 복왕의 경우, 의식을 차렸으나, 다시 코마에 빠져들어 전시 태세 전환이 늦어졌고, 삼울사북은 당 내 사상논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엄청난 자초지종을 뒤로하고 그들은 끝끝내 2011년 제 1분기 오복합작을 이루었다. 맹자가 말한 오복동주의 이상적, 애정적 연대가 다시 한 번 시작된 것이다. 서로에 대한 뜨거운 情으로 연대를 이끌어 낸 이들은 그들의 하나가 된 마음만큼 자신들의 육체가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약의 힘을 빌어 巨事를 이루고자 하였다. 汚는 Hot XXX를 福은 카사노바가 최음제로 사용했다는 초콜릿을 구입하였다. 이번 오복합작이 어떠한 결과를 냈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건은 오복관계에 긍정적 발전을 준 것은 확실하다.
- 박철민, 『삼황의 분홍 별 5권 - 동현사변과 오복합작』, 파더텅(2011) -
주1) 조만식 기념관 310호실은 사학과의 대부분의 전공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학과 학생들은 등교 랠리포인트가 310호실로 설정되어 수업이 아무리 다른 호실일지라도 310호부터 방문한다. 그러나 사학과 전용 강의실인 310호실의 환경은 열악하다. 이곳은 IT와 태양의 축복을 받지 못한 이계로서 SSUWLAN은 물론이고 3G의 전파마저 미치지 못하며, 365일 형광등을 켜야 될 정도로 어두워, 원래 잉여롭고 어두운 사학과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어둠의 힘을 받아 살아가는 무리가 있으니, 대표적으로 오복을 들 수가 있다. 310호실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은 여름이 다가온 시기이다. 20명도 많은 소규모 강의실 310호실에서 30명 이상이 듣는 강의를 들으면, 엄청난 CO2와 열기 속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 다른 강의실을 사용하면 되겠다고 하겠지만, 사학과에서 가장 큰 강의실인 법학관 404호실은 주로 사학과 학생에게 멀고도 먼 세계인 유럽 관련 수업이 이루어져 작년의 경우에는 7명이 60명이 정원인 404호실에서 수강하는 사례도 있었다.
- 덕천가강, 『강의실개론 - 310호실 편』, 그랜드 마더텅(2010) -
그대가 의악에게 술, 밥, 집, 안식을 제공해오고 단 둘이 가진 시간들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결국은 오복도 복인 것이야~의악
차라리 汚福의 착착 감기는 혀 맛이 姓福보다 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