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감옥의 역사' 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적어서, 자료를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진수명 교수님의 교정학 개론 중 역사와 연관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타 몇몇 글들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어려운 단어들은 가급적 쉽게 풀어썼구요, 그럼 곧장 본론으로 들어 가겠습니다..

고조선에서부터 고려시대까지는 감옥과 관련된 사료가 많지 않습니다. 몇가지 나열식으로 들어 보자면, 부여시대에는 영고(공동 축제일)때 모든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를 석방하던 풍습에서 감옥의 존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시대에는, '관리로서 수뢰한 자와 절도는 그 3배를 배상하게 하고 종신금고형에 처하였으며, 반역자는 사형에 처하고 비록 속죄하였더라도 노비를 면치 못한다' 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신라시대 10대 내해왕 때에는 가뭄으로 인한 죄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죄수들을 석방했다 하고, 3대 유리왕 2년에 왕이 시조의 묘에 참배시에 관내의 죄수에 대하여 대사령을 내렸다고 하며,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죄수들에게 대사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를 종합하면, 삼국시대까지의 형벌제도는 응보주의에 입각했기에 준엄하고 가혹했다고 합니다. 집행방법도 조직화되지 못하고 인격을 무시한 비인도적인 원시적 감옥이었기에, 투옥된 자는 완전히 인간성을 상실하며 범인의 개선면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 고려형법에 규정된 5형제(태,장,도,유,사형)가 근간을 이루는데, 이중 감옥과 관련된 형벌은 도형입니다. 이 시대에 형성된 형법이 조선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곧장 조선시대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의 구금관서로는 형조의 전옥서, 의금부의 금부옥이 있었고, 병조, 비변사, 포도청에 부설된 옥사와, 궁중의 유죄자를 수금하는 내수사옥 등이 있었으며, 지방에는 감사와 수령의 주재지에 각각 도옥 또는 부옥, 군옥, 현옥등이 있었습니다.

감옥 자체만을 두고 살펴보면, 남자와 여자의 감옥이 따로 있고, 부모 또는 형제가 아니면 면회를 허가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죄의 경중에 따른 경, 중옥의 구분과 양옥, 온옥의 구분이 있었던 것 같으며(세종실록2월 신해조), 좌우포도청에 부설된 옥사에는 좌옥 우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고려시대의 5형제도의 전체적 틀이 조선시대로 계승됩니다. 이중 따로 살펴보고자 하는 도형은, 복역기간은 1 ~ 3년이며, 장형을 함께 집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죄수들을 각 지방의 제염소, 초철소로 보내어 힘들고 괴로운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오늘날의 징역형에 해당하며 도형기간동안 관아에 구금하여 일정한 노역에 종사시키는 자유형의 일종이라 하겠습니다.

이후 갑오개혁에 이르러서는, 도형이 징역으로 바뀌고 감옥규칙과 징역표가 제정되었습니다. 감옥사무는 경무청으로 이관되고, 전옥서는 경무청 감옥서로 변경됨과 동시에, 종전 직수아문에 부설되었던 감옥은 모두 폐지되어 한성부내의 감옥사무가 일원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1907년 법부관제와 감옥관제의 제정으로 감옥사무는 내부 경무청 관할에서 법부관할로 이관됩니다. 공소원 검사장은 법무대신의 명을 받아 그 관할 내의 감옥을 감독하고, 감옥의 장인 전옥은 법무대신 및 검사장의 지휘 감옥을 받아 감옥사무를 처리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갑오개혁을 계기로 5형 중심의 형벌체계가 자유형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근대적 자유형이 도입된 것은 갑오개혁부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1909년 감옥사무를 일본에게 박탈당하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조선총독부는 조선형사령을 발표하고 1912년에는 조선감옥령을 시행합니다.

그 이후 1923년에는 형무소가 등장하는데, 전국에 14개 형무소, 2개 소년형무소, 9개 지소를 설치하고, 그 이후 1935년에는 소록도지소, 1937년에 마산에 형무소지소를 설치했습니다.

참고로 서대문형무소에 대해 덧붙이자면, 1908년에 일제는 항일세력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당시 동양 최대인 이 감옥을 세웠습니다. 이곳에는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강우규 의사가 처형당한 사형장, 여러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었던 1평 남짓한 좁은 감옥들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된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 미군정 하에서 군정법령과 헌법부칙제로 형행법 제정 전까지는 일제시의 감옥법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량수형자석방령이 공포되어, 삭감일수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이후 1950년 현행 행형법의 제정이 제정되어 이전 감옥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제가 조사하고 정리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자료 -
교정학개론 진수명 교수, 경기대학교
조선말기 근대적 행형 제도에 관해서
네이버 지식인 (도형제도)
네이버 백과사전

출처: 이성복(sungb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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