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어릴 적 삼국지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수호지나 초한지, 열국지 등에도 눈을 돌려보았을 것이다. 역사소설이나 역사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유년시절, 역사 속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나를 기어이 사학도로까지 이끌어냈고, 현재 역사 공부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어릴 적의 책에서 얻은 경험들은 내게 무척이나 특별하다. 중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의 기저를 이루는 것들은 대체로 그러한 유년시절의 독서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2. 유방의 인재경영이 항우를 물리치다

1) 항우와 유방의 기반

항우는 기후가 따스한 양자강 부근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초 민족이라는 막강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이다. 항씨 가문의 이름을 내걸면 자연스럽게 초의 민중들이 그 휘하에 모여드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용맹하고 명석했다. 백그라운드도 든든했다. 시대의 흐름까지 모든 점에서 그에게 유리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방을 가소롭게 볼 만도 했다.

그에 비해 유방은 서민 출신이었다. 그냥 그런 대로 먹고사는 농가의 막내둥이로 태어나, 농사일이 재미없어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건달이었다. 또한 그 도시의 주먹들을 휘하에 거느리는 보스였다. 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예의범절과는 담을 쌓았고, 입은 시궁창이라 열렸다 하면 욕설에다, 다른 지역으로 잠입하여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자도 밝혔다. 하지만 대단한 용모와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신화적 인물로 만들어 줄 용처럼 생긴 얼굴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황제나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 한 것도 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런 대단한 용모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난세가 찾아오자 패 지방을 장악하더니 마침내 관중왕이 되었다가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의 패권을 쥐게 된다.

2) 유방의 성공 요인 1 - 부로의 지지를 이끌어 내다

유방의 성공 요인은 대략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부로(父老)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 둘째, 허(虛)의 인격이다.

25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체안 리(里)의 지도자가 바로 부로이다. 진 제국의 통치 시스템은 법의 원리에 기초하여 모든 행정 단위를 중앙 정부가 통제하고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각 지역을 봉건영주가 마음대로 다스리는 봉건제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리 단위의 부로만은 아무리 진 제국의 통치 그물망이 치밀하다 해도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부로는 간단히 말해 마을의 덕망 높은 어른이다. 그 어른은 당연히 친척과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 한다. 따라서 부로는 리의 인명과 재산을 해치는 정치지도자를 지지하지 않는다.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결코 동조하지 않는다.

그런데 항우는 이 부로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는 병사를 보충하고 병량을 확보하는데 항우는 딱히 부로들에게만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양자강 유역의 초 민족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주었고, 그 쪽에서 쌀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모자라면 작전 지역에서 약탈하면 그만이다. 그 때문인지 항우는 자신에게 대항한 세력을 잔인하게 처리했다. 몇 십만명을 한꺼번에 생매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애당초 힘이 없었던 유방은 부로들의 마음을 끌려 노력했다. 그것마저 못하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진의 수도가 있던 함양의 관중 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항우 덕분이었다. 항우가 관중 땅의 민중들에게 너무도 잔혹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들은 유방을 지지했다. 민중의 지지는 병력이나 병량의 보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 하나 하나가 정보원으로서의 역할을 해 준다는 것도 무시못할 이점이다.

3) 유방의 성공요인 2 - 허(虛)의 인격

유방은 성공한 정치지도자치고는 참으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먹는 것과 여자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없었다. 그에게 물질은 조직을 운용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성격은 그의 휘하에 모여든 인재의 운용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유방은 자신의 아래에 들어온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해주었다. 유방을 비롯한 부하들의 목적은 명백하다.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의 패권을 쥐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권력과 부를 얻는 것이었다. 유방은 그렇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주면서 때로 유방은 멍청이였고, 겁쟁이였고, 우유부단했다. 항우에게 지기만 하면서 끝없이 도망쳐야 했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약점의 총체였다. 그런 유방의 의식 내지는 정신을 허(虛)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놀랍게도 ‘허’ 했던 그의 휘하에는 천재가 많았다. 장량이나 한신은 너무 유명해서 말할 것도 없고, 패 시절부터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한 제국의 성립에 공헌한 소하, 조참, 하후영 등이 있었다. 유격전의 달인이었던 팽월이나 맹장 경포도 그의 휘하에 들어와 항우를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이 유방을 모시는 목적은 다양했을 것이다. 순수한 자기실현의 의지로 열심히 싸웠던 한신이나 장량, 그리고 공자의 사상을 정치 무대에서 실현시키고 싶어했던 역이기가 있었던 반면에, 권력과 땅을 얻고 싶었던 팽월이나 경포 같은 인물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은 후자에 속하는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마음껏 뛰놀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세던 항우가 쫓겨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유방의 천하는 전략의 천재, 행정의 천재, 전투의 천재들이 마음껏 뛰놀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하나의 텅 빈 장소였다. 그런 인간적인 자세나 분위기, 혹은 정치가로서의 사상은 민중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4) 혈연의 집단을 부정함으로써 뜻의 집단을 얻다

인간 사회에 있어 혈연은 모든 힘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다. 가족과 공동체의 지원을 기반으로 하여 순수한 자기실현의 목적의식을 가진 집단이든, 권력이나 땅을 얻으려는 집단이든, 이들 이익집단의 총체적인 지원이 결합될 때 최고의 권력이 태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유방은 이런 상식을 깨뜨려버렸다. 그는 항우에게 쫓겨 마차를 타고 달리는 중에 자식 둘을 수레 밖으로 던져버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대의 가부장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있으면 자식은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다. 그는 피로 연결된 가족을 가볍게 보았던 것이다. 그의 휘하에서 핵심 권력을 가진 사람 중에 그의 혈연은 하나도 없었다. 그로 인하여 그는 피를 함께 나누지 않은 뜻(志)의 집단을 얻었다. 소하, 조참, 장량, 한신 등은 모두 ‘뜻’ 의 집단들이었다. 유방은 피의 집단(血)을 부정하여 뜻의 집단(志)의 얻은 것이다.

한편 항우는 혈연적 가족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가족이 아니면 믿지 못했다. 그가 아버지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아부(亞父)’ 라고 부르며 존경했던 범증, 그리고 종리매 등의 몇몇 맹장들을 제외하고 항씨(혈족)가 아닌 사람은 그의 조직에서 활개를 치지 못했다. 그의 휘하에서 과연 천재가 남아날 수 있었을까? 난세의 천재는 기발한 전략과 흔들림 없는 의지로 주군을 권력의 정점에 올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한다. 그 주군이 자신의 피나는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는 떠날 것이다. 그 천재는 피를 따라 온 것이 아니라, 뜻을 따라 그 아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의식에 투철한 사(士)였다. 항우를 버리고 유방에게로 간 한신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신이 없었더라면 과연 유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유방도 한번쯤은 그런 가정법으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3. 결론 : 사마천의 이야기로 돌아오며

이 시대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던 시기에 사마천이란 역사 기록자가 나타났다. 그는 송대 이후의 학자보다도 더 오늘날에 가까운 감각으로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아마도 그가 20세 때였을 것이다. B.C. 126년경에 천하를 여행했는데, 이 여행에서 그는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기록과 민속과 전승을 직접 보고 듣고 채집했다. 그가 현지에서 적극적인 취재활동을 벌였음은 『사기』에 빈번히 등장하는 속어로 상상할 수 있다. 관념어와 개념어를 배제하고 그 지역 노인들의 어투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이 여행에서 사마천은 한, 초의 사람과 말이 서로 뒤엉켰던 지역도 방문했다. 양자강 하류와 강남과 같은 초의 근거지로 가서 이질적인 가옥, 풍습, 인정을 접하고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멸망한 초나 항우에 대한 감정이입이 농후하다는 것도 그 문장의 분위기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마천은 항우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 "옛날 순 임금의 눈에는 눈동자가 2개씩 있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언젠가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항우의 눈동자도 둘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는 순 임금의 자손이란 말인가. 그가 세상에 나와 떨친 세력이 그처럼 격렬했던 것도 어쩌면 까닭이 있는 말이었는지 모른다. 항우의 경우 이렇다 할 기반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 3년 만에 연, 조, 한, 위, 제의 5제후를 거느리고 마침내 진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그리하여 천하를 분할하고 자신은 그 우두머리로서 패왕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그는 뜻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수백 년에 걸쳐 이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항우에게는 치명적인 실패를 저질렀다. 고향인 초나라만을 그리워해 관중 지방을 버리고 떠나 버린 점, 의제를 내쫓고 제위를 찬탈한 일, 그리고 자기에게 거역하는 왕후를 용서할 줄 몰랐다는 점 등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모든 일을 자기 생각만으로 처리했고,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았다. 패왕이란 무력에 의하여 천하를 정복하는 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항상 그런 식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그 결과 5년 후에는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고, 자신도 비극의 최후를 마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각성할 줄 몰랐다. 죽는 순간에도 하늘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지, 자신의 지혜와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이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 

항우는 일개 개인으로서의 열전이 아니라 역대 왕들의 기록인 ‘본기(本紀)’ 로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해도, 매력적인 패배자들의 기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보다. 항우를 비판하는 사마천의 문장 속에서 자꾸만 연민의 정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 참고문헌 □

사마천 저, 김진연 외 편역,『한권으로 보는 사기』, 서해문집, 2004.
사마천 저, 김진연 외 편역, 『사기2: 진실로 용기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 서해문집, 2002.
사마천 저, 김도훈 엮음, 『한권으로 읽는 사기』, 아이템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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