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도서관은 늘 피곤에 절어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든 자는 사람들이든 모두 시험공부에 극도로 지쳐있는 사람들 뿐이다. 학교를 둘러본 동생은 우리 학교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교인지 몰랐다고 했다. 나도 느낀다. 정말 열심히들 공부한다. 시험기간만.

입대 전 2학년때보다도 밤샘인구가 증가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새벽 4시에도 열람실 밖에는 공부하다 지쳐 나온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전화하는 소리, 온갖 잡담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의악은 이틀 연속으로 밤을 샌 탓에 결국 잠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는 새벽 6시까지 제자백가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었다. 어떻게 수요일날 가르친 내용을 목요일에 바로 시험범위로 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출제-_-..) 더이상의 효율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체력은 바닥으로 향해갔다.

조금이라도 자고 다시 하려고 아침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1시간 반 가량 자고 일어나니 몸은 거의 초토화되어 있었고, 어제부터 심해진 입 주위에 난 여드름들은 그 크기와 통증으로 한껏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소염제랑 항생제를 꺼냈다. 체질상 조금만 피곤해도 여드름이 잘 난다. 너무 심할때 먹으라고 준 약이었는데, 시간에 극도로 쫓긴 나는 곧장 입에 털어넣고 골골대며 학교로 향했다.

도서관에 도착하고 자리에 앉고서야 항생제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속은 뒤집히고 끊임없이 헛구역질이 올라왔으며 팔과 다리에서는 경련이 일었다. 몸이 약효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샹 아직 다 못 외웠는데'

마치 수능을 앞둔 날 처럼 미칠듯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아 내가 학업에 이렇게 미쳐있었구나.. 이 마인드로 수능때 공부했다면 지금처럼 이 학교 도서관에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아무리 다잡아도 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입학하고 처음으로 시험을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비록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이제와서 포기하기엔 지금까지 공부한게 아까웠고 보람도 없이 밤샌 것이 후회되었다.

학교 보건실을 찾아가 소화제를 먹고 손을 땄다. 아직 미처 다 외우지 못한 노트를 쥔 손가락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열이 나고 식은땀이 계속 났지만 외투까지 다시 다 뒤집어 쓰고 견뎠다.

호한의 상호교섭부터 주의 봉건제까지 전부 건너뛰고 제자백가를 다시 폈다. 도서관에 도착하고 보건실에서 나오기까지 이미 두시간을 낭비한 뒤였다. 시험은 이미 40여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험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 티 내지 않고 '존왕양이 계절존망.. 계절존망.. 존망!!......의악의악!!' 이지랄 하면서 아직도 경련이 이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답안지를 쓰고 퇴장하고 나서야 빼먹은 것들이 많았음을 깨달았지만 몸상태에 비하면 열배는 잘 쓴거라고 위안하며 미련없이 집으로 와 유보했던 잠을 청했다.

꼬박 반나절을 자고 일어났다. 미칠듯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권교수의 시험이 두개나 남아있지만 오늘은 과감히 쉬기로 했다. 밤샘의 여파는 지금까지도 두통을 일으키고 있다. 그놈의 열공은 사실 고3때의 몫이었고 재수때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삼수할때는 정말 절실했던건데, 그때 난 뭘 했던 걸까?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달려왔으니까, 다음주 금요일까지만 좀 더 힘내자! 의악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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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4/23 14:22
시험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
평소에 해두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하다는 거...

학교 다닐 때. 그펗게 느꼈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책 찾아봐야 할 것, 발표준비할 것 등등의 일들은 항상 눈 앞에 오면 조급해지면서 하게 된다는 거...

이 준비성이 인생이 얼마나 편하느냐를 좌우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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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4/23 19:29
복학생답게 미리미리 공부는 해뒀지만, 내용을 안다고 다 적을 수 있는것은 아닌지라..ㅎㅎ 달달 외워도 생각 안나면 못쓰는 법이죠ㅋ 그대로 외워서 그대로 써야만 학점이 잘 나오는 사학과의 폐단ㅠㅠㅋ

문제는 교수가 수요일에 직접 나눠준 프린트를 목요일에 바로 시험에 출제했던 것이죠.. 어휴..

천왕천공상자권빈이군.. 이따위로 앞글자 외우고 전개해야 될 정도로 악성프린트였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쓰긴 썼는데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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