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중세사든 근세사든 권교수의 수업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첫 화두는 늘 시기구분 논쟁이다. 현재 육말칠초2)의 사학과 역사를 분석하는 몇몇 재야 사학자들은 사학인의 모든 제문제들을 놓고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복옹의 유명세에 무임승차하기로 유명한 의악제를 두고, '과연 의악과 복옹은 언제부터 친했길래 저정도인가?' 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기억이 이처럼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분석하는데 있어서 사료만큼 정확하면서도 또한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사료가 가지는 정확성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선을 넘지 못하며, 이 선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의 사고가 반영되는데, 이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억의 가변성이 한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 저작은 성복박물관과 성복닷컴 등 복옹 중심의 사료(Sungbok.com Based)에 기반해 이루어져 사료의 편향성이 객관성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많은 독자들의 질책과 이론제기, 및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미리 언급해 두는 바이다. 특히 의악 계열의 연구자들과의 논의가 절실한 실정이다.

2. 의악-복옹 대외관계사 약사

의악은 2006년도에 일련의 사건의 여파로 인간관계의 파국으로 치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7년도 하반기부터는 성복박물관에 자주 출입했음이 확인되는데, 이와 관련된 자료는 성복박물관 '일상편집 자료실' 을 참조하도록 한다. (http://cyworld.com/pryx > 사진첩)

2006년도 춘계답사 때, 오티를 가지 않았던 고로3) 아는 이가 없어 고독했던 복옹은, 우연히 의악의 옆좌석에 앉게 된다. 하지만 의악은 그를 오덕으로 오인해 뿌리치고 혼자 다니거나 다른 곳에 끊임없이 빌붙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의악이 인적자원의 가치주를 선별하는데 까막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의 관대함을 지닌 복옹은 육말칠초의 치세를 확립하고 영화로움과 권세를 누렸음에도, 춘계 답사 당시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의악이 연속하한가 및 상장폐지의 위기를 맞자 그를 흔쾌히 성복닷컴의 일원으로 받아준다.

그러나 2007년도 하반기에 이르러 의악은 '의악가' 로 민심을 선동하는데 성공한 뒤 복옹의 보호를 벗어나 의악제를 참칭하고 의악제국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후의 흐름은 이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중첩되므로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의악가는 신의악(21)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구전되던 것을 공룡(23)이 채록해 07년 2학기 씨알지에 수록했다.

3. 오복동주4)의 기원 및 제휴의 성립

의악은 2006년부터 복옹과 절친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성복박물관에서 제공한 사료들로 분석해 본 결과, 복옹이 본격적으로 과생활로 접어든 것은 그 해 5월 경으로 보이며, 축구복을 들고 있는 사진(439p)에 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까지 그들의 친분은 미미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료상 복옹의 2006년도 1학기 인맥 형성 단계는 00형(익명 요구), 건과, 망둥, 좌철, 곰인경, 개돼지, 오일리우스 순으로 뻗어나간 것으로 보이며, 복옹 측에서 제공한 사료 상으로는 2006년 7월 9일, 의악이 자신의 축구복을 들고 찍은 사진이 처음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접선이나 조우는 그 이전에 이루어졌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의악과 복옹의 제휴 확립기의 설정에 대해서는 불충분한 부분이 많아 개수,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복옹이 2006년도 과생활에 전면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는 사당여름학교, 인사동 나들이, 추계답사, 대동제, 학술제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 속에서도 그는 함께한 흔적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2학기 체육대회때 악명높은 초콜릿폰으로 찍은 그의 쭈글쭈글한 면상이 사료로 남아있는데, 이것 만으로 친분의 척도를 가늠하기는 역시 부족한 감이 있다.5)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 의악의 대외관계는 매우 수세에 몰려있었으며, 대부분의 구성원들에게 배척당하고 있었던 바, 2학기부터 이미 대세를 타기 시작한 복옹에게 쉽사리 접근하기에는 그 주변세력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료가 지나치게 방대한 고로 07년 봄까지 띄엄띄엄 스킵했으나, 여전히 의악은 복옹의 대외관계사에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본래 역사가 고대에서 근, 현대로 갈수록 사료가 방대해 지는 법인지라, 복옹 대외관계사가 주 전공이었던 필자 역시 방대한 자료 앞에 신경질이 났다. 만육천장이 넘는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사실여부를 확인해서 내게 돌아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만족?

그러나 자료분석에 지쳐갈 때 쯤, 2007년 여름의 사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2007년 7월 15일, 의악과 복옹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사료가 등장한 것이다. 사진으로 추정컨대, 개돼지와 오일리우스, 그리고 의악과 복옹이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8월 17일, 18일 연속적으로 지하철과 세암장에서 그 둘이 만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8일자 사진 상에 복옹이 '의악의악의악의악' 이라는 의악 특유의 웃음을 입력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를 전후해서 그들 사이의 모종의 제휴가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곧, 방학동안 여러명의 친구들을 섞어서 모듬만남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친분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4. 결론

2007년도 2학기 개강 이후 의악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사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복옹의 인맥은 이미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었고, 사진상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과도하게 많아져 본의아니게 다시 사료 스킵을 단행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스킵을 하면서도 그의 존재감을 곳곳에서 파악할 수 있어 시기구분론 설정은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의악과 복옹과의 제휴는 2007년도 2학기에 이르러서야 일어났던 것이고, 의악은 '의악의악' 의 확산 시기 그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이 상품(?)을 통해 그전의 개가튼(GAE-Garten) 이미지를 벗고 조금이나마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악의악' 이 2학기 말 씨알지에 등재될만큼 조용한 히트를 거듭하면서 그는 그간의 수세적 대외관계를 청산하고 공세로 전환했으며, 이때부터 복옹과의 제휴를 만천하에 선언하면서 신의악(21)이 구전시켰다는 '의악가' 를 민중가요로 선정하고 여우래부터 타물까지 종횡무진 의악의악대기 시작했다. 결국 의악을 구원해줬던 것은, 자신의 웃음소리였던 의악의악이었던 것이고, 그 의악의악 서비스를 개발한 복옹에게 반감을 가졌다가 이후 상품성을 인식하고 협상하자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들의 제휴는 곧, 비슷한 시기의 입대마저 결행하게 했고, 끝내 2010년도 상반기의 먹구름을 잉태했다.

5. 예고

이상으로 의악과 복옹의 제휴 시기구분 논쟁 상편의 서술을 마친다. 하편에서는 의악과 복옹의 제휴 이후의 동향, 그리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군생활 시기 관계론, 2010년 1학기의 어둠과 폭풍우 속 복옹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도록 하겠다.

또한, 다음 논문에서는 본격적으로 의악제의 어둠과 정신질환, 약탈, 방화, 무전취식, 무단침입 등 그의 모든 악정(惡政, 혹은 義惡政)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의악 개인의 보호와 존중을 받을 권리 및 사생활 보호와 관련된 법률적 제문제가 현재 의악법률사무소 측과 협상 중에 있으며, 협상이 마무리 되는 대로 오일리우스 박사와 공동 저술 및 발표에 착수할 것을 약속한다.

 

---------------------------------
1) 정확한 호칭은 다음과 같다. 한자어 표기: 黑穴鬱暗而三鬱兵義惡帝(흑혈암울이삼울병의악제), 영어 표기: Blackholious Gloomious Darkness Three-woolious(Am-wool, Um-wool, Chim-wool) Armious Uiarkuiark XXV Emperor 한국어 표기: 블랙홀리우스 글루미우스 다크니스 쓰리울리우스(암울, 음울, 침울) 아미우스 의악의악 25세, 통칭: 의악제(義惡帝), 삼울제(三鬱帝)

2) 2006년 말 ~ 2007년 초, 복왕의 전성시대를 이름한다.

3) 당시 복옹은 삼수생임을 부끄러워해 오티를 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06년도 삼수생은 무려 5명이었다. 만약 그가 오티를 갔다면 의악과 복옹과의 제휴 가설은 아마도 송두리째 바뀌었을 것이다.

4) 오복동주, 吳馥同舟, 오의악과 복옹은 같은 배를 탔다.

5) 복옹의 2006년의 친분 확인의 척도는 얼마나 자주 사진에 자주 나오는가, 막장사진의 단골인가 등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막장사진의 대가는 개돼지(박설레임, 24)로 현재까지 사진을 봤을때의 불쾌감으로는 자타공인 최고 절친으로 등재될 만하다.

 

:: 참고문헌 ::

복옹, 『육말칠초 일상편집 사료집』, 성복박물관, 2007.
복옹, 『복옹 대외관계사』, BOK2BOOKS, 2010.
복옹, 『의악의 이해』, BOK2BOOKS, 2010.
오일리우스, 『친복파 대사전』, 기름종이, 2009.
오일리우스, 『의악을 피하는 방법』, 기름종이, 2009.
의악제, 『의악대전』, 도서출판 의악, 2009.
신의악, 『의악가』, 씨알, 2007.

http://sungbok.com
http://cyworld.com/pryx

 

---------------------------------

(좌철따위에겐 허락을 받을 이유가 없으므로 걍 무단전재 하겠음)

참고자료 (1) : 재야사학자 좌철(25) 님의 댓글 (2010.03.28)

1) 아무래도 06관계사의 대가이자 06관계사 학회장 유즈리스 오일리우스 오럴XX타인(쓸모없이 느끼한 오럴XX타인)종군사학가의 방대한 강독사료가 빠진 게 아쉬움 >> 오일리우스 박사는 오늘도 사지방에서 열심히 06관계사를 연구하고 계십니다.

2) 옴브렐리우스 복왕의 잃어버린 2년사는 『실록복병장취사일기』에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있음 >> 성복닷컴 '복병장 취사일기'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3) 역시 유즈리스 오일리우스 오럴XX타인의 『공육사기』, 기름비단길, 2006.에도 실리지 않은 Gloomious Darkness Three-woolious(Am-wool, Um-wool, Chim-wool) Armious Uiarkuiark XXV Emperor에 관한 직접적인 편찬에 관하여는 큰 의의가 있음... >> 공룡(23) 교수가 일전에 발표했던 바, 성복박물관과 복왕의 서재에도 방대한 분량의 사료가 존재합니다만, 보다 객관적인 시각의 확보를 위해 서로간의 상호보완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4) 천재적 사진작가이자 광기의 사진작가인, 복옹선생의 대걸작『설레임을 먹는 개돼지의 환희』만으로 옴브렐리우스 복왕과의 친분관계를 표명하기 어려움... 개돼지는 그 문제작을 친분의 척도가 아닌, 자신의 학연짱을 향한 의지를 표명하는 도구로서만 이용하여, 자신의 약한 아우라를 매우려 하고 있음. >> 2006년 문제의 걸작이 발표된 이후 개돼지(24)는 깊은 내상을 입고 한동안 사진기를 기피했습니다. 하지만 의악울제께서 처음 의악의악 서비스를 거부했다가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듯이, 06년 최대 문제작 <설-개-환> 또한 그의 부귀영달에 일정부분 공헌한 바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5) 저주받은 초콜릿 폰 등 복옹선생의 여러가지 화도구들에 대한 설명이 빈약함. 복옹선생의 화도구는 복왕관계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 논문의 주제가 의악-복옹 관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연구는 후일 오일리우스 박사가 찬찬히 짚고 넘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참고자료 (2) : 재야사학자 좌철(25) 님의 논문 (2010.04.02)

복황관계사에서 밝혀낸, 역사 왜곡

대마법사 옴브렐리우스 케찹코아들의 '복황과 삼울제의 관계 규명'에 따르면, 복황은 본인 스스로 삼울제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필자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의 충신 유즈리스 오일리우스 오럴XX타인도 나와 블랙홀리우스 음울암울침울 글루미우스 다크니스 불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나의 관계를 세트로 묶기 위하여, 다른 학생들을 군대에서 선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절대적으로 왜곡되었으며,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필자는 2학년 대학생이라는 상표를 붙이고 다닌 지, 1년하고도 1개월이 갓지났다. 하지만, 복황과 삼울제는 3학년이므로 2년하고 1개월의 기간을 학교 생활을 하였다. 이를 유추해내면, 이들은 재학기간동안 잦은 접촉을 넘어, 부비부비를 해댈 수 밖에 없는 양상이다.

유즈리스 종군박사와 복황의 06관계사 왜곡의 문제점은 이밖에도 더 있다. 필자가 군에 입대한 것은 2007년 3월 26일. 다시 말하여, 2007년도 학사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복황의 군입대 연도는 2008년, 또한, 삼울제의 군입대 연도도 2008년이다. 그럼 필자가 부재한 2007년도에 복황과 삼울제는 계속적으로 부비부비를 하였다는 뜻이된다. 진실의 목소리가 요기까지 진행이 되었으면, 유즈리스 종군박사와 복황 무리는 나와 삼울제가 2006년에 B.F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에 이들의 이치에 맞지 않는 왜곡을 막기 위하여, 복옹의 작품들을 분석하여, 보았다. 그리고 분석결과, 2006년도 작품에는 복황, 삼울제, 그리고 필자 모두 따로 찍힌 사진이 대부분이였다.

결국, 복황과 삼울제의 관계는 2007년도에 형성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게다가 2006년도의 나와 삼울제의 정치참여 양상을 비교하여 보면, 사학과의 오일리우스, 율리우스, 설레발, 복황의 씨바알짱을 향한 권력싸움에 관심이 멀었던 필자는 중앙동아리 활동을 하였으며, 다양한 정치참여를 즐겼던, 삼울제는 인문대 소모임인 여울회와 사학과 소모임인 타물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시 말하여, 중앙동아리 체육분과 동아리 활동을 한 필자와 인문대 예술분과 소모임을 하였던, 삼울제는 결코 접촉이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삼울제와 필자의 교류는 사학과 최대의 전쟁터, 갑작스러운 공격 놀이 내에서만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2006년부터 독자적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도 독자적 활동을 이어가기에 삼울제, 복황 등과 부비부비의 역사가 없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고한다. 아무 근거도 없이 삼울제와 필자를 엮으려는 뻔뻔스러운 복황과 오일리우스 종군박사는 왜곡을 당장 그만두기를 요구한다. 필자는 복황과 삼울제가 이미 서로 같은 수업을 듣고 다디실 정도로, 부비부비 커플임을 알고 있으며, 유즈리스 또한 삼울제에게 주말마다 전화 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들의 지기를 애꿎은 필자에게 안기려는 파렴치한 행위는 계속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며, 나의 愛刀인, 쿠로보쿠토(黑木刀)를 악의 무리들에게 사용하지 않기를 원한다.

* 삼울일체(음울-암울-침울, UAC), 삼북일체(여우래의 드럼, 타물의 북, 우리들의 동네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http://sungbok.com/trackback/1129 관련글 쓰기
의악 
wrote at 2010/05/13 19:47
의악의악의악의악의악
섹시복복 
wrote at 2010/05/13 19:48
글 긴 것도 섹시하군. 섹시복복 자체가 매력적이니까~
후르츠펀치 바나나쉐이크 사무라이 
wrote at 2010/07/19 20:47
UAC의 발견과 부유한 거지 의악의 경제적 착취에 시달리는 06들에 관한 내용 보충이 필요함.
이름 :
비밀번호 :
홈사이트 :
비밀글 :
*1  ... *77  *78  *79  *80  *81  *82  *83  *84  *85  ... *560 
count total 379,176, today 153, yesterday 162
rss

전체 글 보기
추억 만들기
보낸 편지함
SB 행복투자 펀드
복2의 재테크 테크닉
복병장 취사일기
리포트 공작소
씨알 텍스트
성복닷컴 작업 노트
글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