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끝나고 남은 삼겹살을 구워먹을지 양념을 해먹을지 고민하던 나는 이모님께 고추장 양념을 해서 볶아먹을 것을 제안했다. 이모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하셨고, 그녀가 밥판에 양념한 삼겹살은 점심 조리가 끝남과 동시에 맛있는 제육볶음이 되었다. 밥판으로 위장한 상태에서 고기를 볶았기에 제육볶음은 특유의 사제고기 냄새를 풍겼지만, 킁킁거리며 먹을거리를 찾으러 다니는 하이에나 간부들도 밥판 뚜껑만 닫아버리면 끝내는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떠나갔다.

제육볶음이 완성되자마자 분대원들은 모두 밥 아래에 고기를 깔고 밥으로 꼼꼼히 덮어 위장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날 메뉴인 닭갈비 소스를 밥 위에 적당히 얹어 제육볶음의 존재는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었다. 그래도 마음씨 좋으신 이모님께서는 조리가 너무 잘 되었다며 대대장을 위해 간부식당에 따로 제육볶음을 몇 접시 담아 내놓았다. 그제서야 조리실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본부 보급관과 9중대 보급관이 달려와 욕심껏 고기를 퍼담았다. 제육볶음 양이 상당히 많아서 우리와 보급관들이 충분히 챙기고도 밥판에는 고기가 얼마간 남아 있었다.

마침 병사식당이 만원이라 간부식당에 몰려앉은 분대원들과 이모는 제육볶음이 마치 닭갈비인 양 조심조심 밥의 위장상태를 유지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담이 입장하자마자 곧장 발각되고 마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때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위제트, 다시 군담을 쳐다보자 위제트를 바라보는 그의 식탐 가득한 눈빛! 아마도 위제트가 자신에게도 고기를 가져다 주겠거니 생각한 듯했다. 그러나 위제트는 자기가 쓸 수저만 달랑 챙겨왔고, 우리의 식판은 어느덧 밥과 고기의 밸런스가 점차 무너져 은엄폐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간부들의 소굴인 간부식당, 우리는 닭갈비를 먹는 간부들 속에서 당당하게 제육볶음의 육질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군담의 실망한 표정은 점차 분노의 그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눈치빠른 본부&9 보급관처럼 조리실로 들어와 얻어가면 될 것을. 자신도 평소에 수시로 조리실로 들어왔으면서 오늘은 대접받고 싶었던 걸까? 밥판에는 여전히 제육볶음이 남아있었건만, 체면상 차마 자기도 고기를 달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는 군담. 그는 뒤늦게 이모 맞은편에 앉아있던 위제트에게 씩씩거리며 다가가 '대대장에게만 고기를 따로 해서 내는건 아부다' 로 운을 떼며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의 시선처리로 보아 분노의 타겟이 이모에게 쏠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육볶음의 원 제작자가 이모라는 사실을 간파한 눈치였다. 그렇게 한참을 짜증을 내고 나서는 간부들을 붙잡고 욕을 하고 다시 우리에게 와서 버럭버럭.. 사라지지 않는 분노를 달래지 못해 폭발해버린 군담은 조리실로 난입해 밥판을 탕탕 두드리면서 악마의 묘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 묘책인 즉슨, 앞으로 매 끼니마다 밥판을 바로 닦지말고 거기에 물을 담아 끓여 숭늉을 내라는 것이었다. 1대대, 2대대도 다 그렇게 한다며 밥판 9개 전부에 숭늉을 만든 뒤에는 취사지원이 끝난 국통에 담아 배식을 시키란다. 밥 다먹고 일과 하러가는 병사들을 붙잡아 배식 시키고 뜨거운 숭늉을 벌컥벌컥 마시게 한 뒤 또 취사지원을 시키겠다는 얘기다. 안그래도 늦게 끝나는 취사지원인거 알면서 하는 소리일 테고, 자신이 고기를 먹지 못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임에 틀림없었다.

한편 본의아니게 원인제공자가 되어버린 이모도 마찬가지로 분노하셔서 1대대, 2대대 이모님들에게 전화를 해보시더니 숭늉은 금시초문이라는 정보를 얻어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증 획득의 의의) 하지만 아직까지도 분이 안풀린 군담은 취사지원이 다 끝날 때까지도 취사장을 뜨지 않고, 보급관, 관리관 등등 자기보다 짬안되는 간부들을 한번씩 붙잡고 숭늉도 안만드는 개판인 취사장이 어디있냐며 욕을 퍼부어댔다.

'고기 안줘서 나 삐졌어'

군담의 분노는 요 한마디로 요약된다.

'밥판마다 물 담아서 숭늉 다시 끓이면 병사들이 퍽이나 잘 먹겠다!!'

이모님의 분노도 대단했다. 이제는 식어버린 제육볶음이 여전히 밥판 안에 담겨 있었지만, 이제와서 군담을 줄 수는 없었다. 아직도 분노의 여운에 스스로 미쳐가던 그는 취사장 이곳저곳을 순회공연하며 다시금 온갖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결국 우린 두손두발 다 들고 공중에 떠있기를 강요받는 심정으로 그의 짜증을 받아냈다. 그 지랄스러움의 정점에서 갑자기 연대 군수과장 방문 소식으로 극적으로 국면이 전환되긴 했지만, 우리는 이날 이후로 한동안 숭늉 컴플렉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숭늉 강요는 현재진행형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http://sungbok.com/trackback/1105 관련글 쓰기
wrote at 2010/08/30 11:55
군담의 횡포는 글로만 봐서는 대박인듯 합니다. ㅎㅎㅎ
어떻게 민간인 이모님을 앞에 두고 그럴 수 있는지... 집에 가서 해달라고 하면 될 것을................. 참.........어이상실...
BlogIcon BOK2 
wrote at 2010/08/30 16:25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네요 이것도..ㅎㅎ
이 분의 횡포 때문에 민간인 이모님께서 참 많이 참으셨죠ㅠㅠ 이모님께서 주임원사랑 대대장한테까지 찾아가서 조치해 달라고 해도 워낙 보복 성향이 강해서 어떻게 안될 정도로 속을 썩였죠ㅠㅠ 3대대를 대표하는 막장 간부 중 한명입니다ㅎㅎ
wrote at 2011/07/24 21:50
병들이 삽겹살쪼가리남은거가지고 먹는거 뭐가 그렇게 먹고싶으신지 윗분들은.

저희같은 경우 간부들은 그런거에 대해서 타치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 먹고 쉬어라" 이러곤 가셨죠,

참 간부들이,,,,마음씀씀이가 어째 그럴까요
BlogIcon BOK2 
wrote at 2011/07/25 01:59
저희 부대가 좀 유난하신 간부님들이 많아서 병사들간의 스트레스보다 간부와 병사들 사이의 피로감이 더했죠ㅎㅎ 저 전역한 이후에 후임들도 꽤나 고생 좀 했더라구요..
이름 :
비밀번호 :
홈사이트 :
비밀글 :
*1  ...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 *560 
count total 379,177, today 154, yesterday 162
rss

전체 글 보기
추억 만들기
보낸 편지함
SB 행복투자 펀드
복2의 재테크 테크닉
복병장 취사일기
리포트 공작소
씨알 텍스트
성복닷컴 작업 노트
글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