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

아마도 이 편지가 군대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주 금요일에 사단장이 신경써준 덕에 사단급 휴가 우선조치로 사단 독후감 포상을 나가기에 이르렀고, 복귀 후 5일 격리 + 주말 + 일과 4일 + 신정&주말 + 월요일 하루 일과 보내면 화요일에 전역이란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가 싶어 요즘은 추억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어. 후임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여기서도 몇몇 좋은 사람들을 얻고 나가게 되는 듯해 기쁘고. 요즘은 갈굼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일해도 일하는 것 같지가 않구만. 집에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은게. 벌써부터 아쉽기도 하고 정도 많이 들었고.. 막상 사회 나가면 25살의 무게도 있고, 더이상 현실 신경 안쓰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참 그렇네!! 학교 다니고 직장 얻고 돈 벌고 하다보면 나는 아버지 같은 기성세대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인가!!

생각보다 이루어 놓은 것이 많았던 군생활. 무엇보다도 '짬' 이라는 것을 둘러싸고 벌이는 새로운 인간관계. 기존의 평범한 인간 군상에서 벗어난 사람들 속에서 겪는 문화충격. 경험해 보지 못한 취사업무 등.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었고, 말년까지 고생한 능력있는 분대장으로 대접받으며 자랑스럽게 분대원들의 아쉬움 속에서 전역을 꿈꾸게 된 것은, 일병-상병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인간관계의 극적 반전이었어. 인간관계의 양 극단을 체험해 보고, 유능과 무능을 오가며 끊임없이 일과에 시달리고. 얼마 되지 않는 자유시간 동안 조금씩 읽어나간 책, 운동.,. 그리고 간부와 병사들의 감탄을 자아냈던 칼질과 사격술. 운동 신경 제로였던 내가 무한 체력으로 거듭났던, 전방위적으로 뜻깊은 진일보를 거둔 군생활이었다고 감히 평해도 될까나.

그러나 군생활동안 인격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보기도 하고, 머리가 비어버린것은 심각한 타격이야. 또한 이전에 유지해 온 인간관계가 자동적으로 정리되거나 청산되기도 했지. 이를테면 여자 인맥이 다시 제로가 되었다던가-_-.. 그냥저냥 알음알음 하던 사이는 다시 소원해졌고.. 하지만 이런것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필연이 될 것이기에, 끊임없이 다시 인맥을 형성하고, 공부하고, 돈벌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발전적 사고로 생각의 마침표를 찍게 되더구나. 어쨌든 지난 2년간 군생활의 모든 산전수전을 다 겪어보면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대장 직책을 맡으며 리더쉽을 키울 계기도 얻었고, 체력이나 정신력 모두 강해졌고, 그렇게 여러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어.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해온 나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럽단다(자화자찬)!

전역하는 시점이 오면 지난 2년에 대한 아쉬움이 차오르겠지? 일, 인간관계, 계획 등 모든 부분에 대해서 말야. 어떻게든 후회를 할 것이고, 다만 그 후회를 줄이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아야만 하겠지. 무엇보다도 이런 좌충우돌 군생활을 겪고 나서 사회로 나가는게 내겐 어느정도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군생활 너무 길었다-_-..)

지금까지 모든 편지에 답장을 했는데 네가 받지 못했다니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수령자가 수령 못한 것도 사실 발신자의 책임이니 다시한번 글을 갈무리해 편지를 부친다. 아쉽지만 이 이후의 이야기는 사회인의 신분으로 이어가도록 할게. 군인으로서의 나는 이제 바이바이임. 화이팅이다 재준아ㅎㅎ

09.12.13 민간(진) 馥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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