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싸이월드 메인으로 로그인해서 밀린 쪽지들을 읽어보곤 하는데, 종종 친구들에게서 네이트온을 연결하자는 초대장이 오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수락하곤 한다. 배려인지 예의인지 무심인지 당연인지 나도 알 수 없는 수락이다. 어차피 수락하면서도 네이트온은 설치 하지도 않을거면서. 그러다가 오늘은 어떤 친구에게서 초대장이 날아왔길래, 오랜만이라 내심 반가워서
냉큼 수락을 누르고 무심코 또 무언가를 누른다는게 그만 네이트온을 설치하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MSN도 잘 들어가지 않는 주제에 무심코 네이트온을 깔고 나서, 뭐 이미 깔았으니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로그인을 했더니 그동안 네이트온 초대를 수락했던 이들이 그리도 많을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이전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좋은 모습만 각인시켜 나 자체를 재미있고 멋진 사람으로 기억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재평가 할 수 있다면.

물론 말도 안된다고 웃어 넘기지만, 친구의 얼굴에 비친 종종 바람직하지 못했던 내 과거 모습을 보게 될 때, 친구의 마음에 내 과거 모습이 담겨있을 것을 생각하면, 삼수까지 해가면서 독서실에 쳐박혀있는 나란 인간은 그저 조용히 내 갈길을 가는게 나을거란 자격지심만 커져갔다. 그래서 어느순간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고, 이제는 열린 문보다 닫힌 문이 월등히 많은 채로 그나마 열려있던 몇개의 문도 거의 닫혀가는 채로 2년 가까이 자의 혹은 타의로 홀로 독야청청하다보니, 뿌리깊은 상실감이 외로움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을 알 것도 같았다.

지금 나의 관심 앞에 놓여있는 것은 수능 뿐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한번의 변화도 없이 어설픈 자존심을 지키고자 고집스러운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사람이 언제나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리고 이후 사회와 이전 사회와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나의 특성상, 또 원치않은 관계 물갈이에 의한 낯설음이 고개를 들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변화는 너무도 느렸고 어떤 친구가 나에게 던진 핀잔처럼, 생각은 있으나 실천은 없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가 있는것 같아도, 남이 보기엔 결국 매한가지일 뿐이다. 아무리 스스로 조금씩 변화했다 하나 그것은 객관의 판단이 아닌 주관의 판단일 뿐이며 결국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까.

수년간 나의 정신을 괴롭힌 잊지못할 어떤 악플러의 비웃음이 나의 허상을 욕한것이 아니라 나의 본질을 욕한것임을 알았을 때, 그에게 품었던 오랜 와신상담은 한순간의 자괴감으로 무너져 내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가 옳았음을 깨달았고 그가 남긴 화상과 글자를 불편한 마음으로 돌이켜 보면서, 그때의 나는 이미 순수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에게 품었던 증오심이 어느새 나의 본질을 향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겨우 20살, 남은 인생 운운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앞으로도 인생을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대나무의 고집도 풀의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지 신중히 생각해 보고, 그 생각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할 일이다. 그것이 백지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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