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d #1074
categorized under 복병장 취사일기 & written by BOK2
categorized under 복병장 취사일기 & written by BOK2
어제 예비역 마크를 달면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어하는 위제트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 내가 양왕을 보낼 적에 느꼈던 감정이 그와 같았을까 싶은게. 집에 간다는 것이 우리 인연의 끝을 예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함께 군인으로 지냈던 날들은 추억이 되고 말거라는 것을 통감하고 있기에.
예비역 마크는 그렇게 상념에 휩싸이게 만들고야 마는 이상한 힘이 있었어. 생활관으로 올라온 쟈스틴이 내 야상을 보며 또 남다른 감정에 젖어드는 것 같아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치 고등학교 졸업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추측해 보았다.
일병 때부터 너희들과 함께 온갖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군생활 최고의 수확이었다. 체력을 키우거나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그 모든 상투적인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사실 2년간의 '성장' 이라는 것은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인간관계 정립의 핵심이 아니었나 싶다. 함께 즐겁기도, 때론 다투기도, 힘들고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고, 24시간 내내 함께 하는 군생활은 내게 그 기간만큼 사람을 배우는 삶의 현장으로 기능해 왔어.
결국 군대에서 우리는 이미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앞으로 녹록치 않을 것임을 미리 체험하고 있는 셈이지. 훈련병부터 병장 말년까지 경험해 보면서 이 기간은 (비록 왜곡된 감은 있으면서도)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 배워온 실수투성이 훈련병 ~ 이등병 시절, 수험생 같이 일을 배우던 일병 시절, 기성세대처럼 기능하는 상병, 그리고 '죽을사람 = 갈 사람' 병장까지, 너희들과는 대체로 상병, 병장 시절과 겹쳐 있었던 탓에, 늘 상급자로서 본의아니게 부딪힐 일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투덜대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했지만 너희들 앞에서는 결국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우리네 아버지들 같은 아쉬운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노년기같은 병장으로 접어들고 구조적으로도 변화가 시작되면서 새로 들어온 오박사의 재롱도 보고, 친구같은 털보, 7월에 이어 12월 군번도 어느덧 취사장의 기성세대로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결코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지. 그리고 노왕과 많은 후임들 틈바구니에서 적절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느낀 스스로의 한계는 불평이나 피로감 호소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동질화로 극복했어야 했다.
내 군생활도 돌아보면 참 파란만장해서 늘 '무사히 전역은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지금의 나는 결과적으로 참 행복하다! 그렇다면 너희들과 마음을 열고 가식없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나는 나는 결국 군생활 성공한 셈이다.
마지막이 역시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도 다 과거가 되고, 너희들이 현재 각자의 문제점을 안고 힘든 점이 있더라도 서로 잘 공존하고 있고, 매일 유쾌한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나란히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다. 그 건강한 분위기 속에서 그간 겪어온 모든 고민과 갈등을 '군생활' 이란 이름 아래 봉인하고 떠날 수 있음을 감사한다.
비록 군생활이었기에 기쁨,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만은 없다는 점,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했기에 작은 일에도 재미를 찾고 유쾌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잊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공부 외에는 딱히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던 내 단순한 20대 초반에게도 한가닥 다채로움이 되어줄 듯하다. 그런 추억을 안겨준 너희들에게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좋은 선임이었는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좋은 형으로 기억되는 것에는 왠지 모르게 자꾸 욕심이 난다. 내게 너희들은 정말 최고의 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비역 마크는 그렇게 상념에 휩싸이게 만들고야 마는 이상한 힘이 있었어. 생활관으로 올라온 쟈스틴이 내 야상을 보며 또 남다른 감정에 젖어드는 것 같아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치 고등학교 졸업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추측해 보았다.
일병 때부터 너희들과 함께 온갖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군생활 최고의 수확이었다. 체력을 키우거나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그 모든 상투적인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사실 2년간의 '성장' 이라는 것은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인간관계 정립의 핵심이 아니었나 싶다. 함께 즐겁기도, 때론 다투기도, 힘들고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고, 24시간 내내 함께 하는 군생활은 내게 그 기간만큼 사람을 배우는 삶의 현장으로 기능해 왔어.
결국 군대에서 우리는 이미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앞으로 녹록치 않을 것임을 미리 체험하고 있는 셈이지. 훈련병부터 병장 말년까지 경험해 보면서 이 기간은 (비록 왜곡된 감은 있으면서도)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 배워온 실수투성이 훈련병 ~ 이등병 시절, 수험생 같이 일을 배우던 일병 시절, 기성세대처럼 기능하는 상병, 그리고 '죽을사람 = 갈 사람' 병장까지, 너희들과는 대체로 상병, 병장 시절과 겹쳐 있었던 탓에, 늘 상급자로서 본의아니게 부딪힐 일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투덜대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했지만 너희들 앞에서는 결국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우리네 아버지들 같은 아쉬운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노년기같은 병장으로 접어들고 구조적으로도 변화가 시작되면서 새로 들어온 오박사의 재롱도 보고, 친구같은 털보, 7월에 이어 12월 군번도 어느덧 취사장의 기성세대로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결코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지. 그리고 노왕과 많은 후임들 틈바구니에서 적절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느낀 스스로의 한계는 불평이나 피로감 호소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동질화로 극복했어야 했다.
내 군생활도 돌아보면 참 파란만장해서 늘 '무사히 전역은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지금의 나는 결과적으로 참 행복하다! 그렇다면 너희들과 마음을 열고 가식없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나는 나는 결국 군생활 성공한 셈이다.
마지막이 역시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도 다 과거가 되고, 너희들이 현재 각자의 문제점을 안고 힘든 점이 있더라도 서로 잘 공존하고 있고, 매일 유쾌한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나란히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다. 그 건강한 분위기 속에서 그간 겪어온 모든 고민과 갈등을 '군생활' 이란 이름 아래 봉인하고 떠날 수 있음을 감사한다.
비록 군생활이었기에 기쁨,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만은 없다는 점,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했기에 작은 일에도 재미를 찾고 유쾌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잊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공부 외에는 딱히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던 내 단순한 20대 초반에게도 한가닥 다채로움이 되어줄 듯하다. 그런 추억을 안겨준 너희들에게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
좋은 선임이었는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좋은 형으로 기억되는 것에는 왠지 모르게 자꾸 욕심이 난다. 내게 너희들은 정말 최고의 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