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명 본인은 어제 취사장에서 아침부터 반나절 동안 노왕과 함께 아이리스를 시청했다. 오씨엔의 무자비한 광고 공세에 6시간 동안 고작 5편 보는데 그쳤지만, 테레비로 드라마를 달리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그날 밤까지 아이리스 연속 방송-_- 점호가 끝나도 하고있었다-_-)

고백하건대 본인은 부활 24편을 3일간, 마왕 20편을 이틀만에 다 보는 놀라운 집중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컴퓨터로 편하게 앉아서 보는게 아니라, 항상 정신없는 간부식당에 눌러앉아 테레비를 붙잡고 있으려니 아무래도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리스의 무시무시한 몰입도와 내여자! 김태희 덕분에, 중간에 짬아저씨가 와서 짬을 나르면서도, 전화로 호출이 오면 행정반으로 달리고, 번개같이 상향식을 제출하고, 후임을 찾으면 찾아다가 데려다 주면서까지 끝끝내 4시반까지 테레비 앞 메인석을 사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노왕과 함께 꼬깔콘을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취사장 안에서 하루종일 상주하다시피 했다. 5편 이후 너무도 지쳐버린 나는 개인정비 시간 자유이용권과 사생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과감히 테레비를 꺼버리고 사지방으로 달려가 나름의 문화생활을 즐긴 뒤 저녁 먹고 헬스를 하러갈 생각으로 취사장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쳐 논게 미안해서 조용히 간부식당 구석에 찌그러져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근질근질했다. 언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리관이 취사장에 진입한 상태였다!

'분대장이라는노무새끼가 취사장 관리는 안하고.. (중략).. 징계할거니까 왜 오늘 하루종일 취사장에 없었는지(????) 진술서 작성하라고 해'

놀란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나갔고 심지어 관리관의 카니발 조수석에 앉아있는 그의 아들까지 봤지만 정작 내가 취사장에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한 채 그는 부르릉 떠나갔다.

뒤를 돌아보고서야 얼어있는 나를 발견한 위제트는 당황하며 관리관에게 내가 취사장에 있었다고 전화를 걸러 갔으나, '취사장에서 밥을 먹고 있는건 취사장에 있었던게 아니다' 라는 이상한 소리만 들었을 뿐이고, 오히려 위제트에게 부탁해서 '있었던 척' 해달라는 핑계로 들려 더 큰 오해를 불러왔을 뿐이다.

당황한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으나 떠오르는 건 그저 아이리스 뿐이었다!ㅠ 노트를 들고나와 후임들과 알리바이를 맞추기 위해 두뇌를 굴리기 시작했고, 나는 오늘 '아이리스를 제외한' 어떤 일을 했는지 맞춰 나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취사장에 하루종일 있었던 고로 퍼즐 맞추기는 누워서 떡먹기였다. 여기서 나는 관리관과 친분이 있는 금일의 당직사관(작담)에게 의도적으로 면담을 신청해 알리바이를 심음과 동시에 동정을 유발했다.

진술서를 출력하러 행정반에 가보니 인사계는 이미 내가 징계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충격적인 결과가 있나. 불같은 관리관이 이미 여기저기다 싸지르고 다니는게 분명했다. 후다닥 돌아와서 진술서 개요를 짜고 본문 사이사이에 구체적인 인물이나 증거물로 나의 일과를 증명하는데 집중했다.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최대한 절제했고, 나름대로 성공적인 진술서를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관리관이 진술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었지만 백범상을 통해 글빨의 위력을 실감했던 관리관이니까, 차라리 어설프게 말로 하려다가 욕먹느니 진술서로 해결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한번 논리적으로 짚고 '오해를 풀고싶다' 는 식으로 그에게 져주는게 중요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의 진술서는 박박 찢어진 채로 노왕의 손에 담겨 전달되었다. 진술서를 인사과로 보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관리관은 문맥을 통해 스스로 승리했다고 믿을 것이었다. 결국 다음날부터 나는 다시 취사장 업무에 초라하게(?) 복귀했고, 그와 1g의 언쟁도 없이 그저 진술서 한장으로 그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윈윈이다. 과연, 세치 혀보다 한 장의 진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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