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지독한 간부울렁증이 있다. 원체 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대등하지 못한 상대에게는 그를 '설득' 하기는 커녕 '브리핑' 따위도 막히는 경향이 많았다. 나보다 어린 정훈장교 등의 몇몇 특이하게 친해진 케이스를 제외하면 어쨌든 간부들 앞에서는 그저 어려웠다. 특히 '고압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더.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겐 강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간부에게 치이고 선임에게 치이고, 후임 눈치보는게 맞겠지;) 

나는 체질적으로 담아두는 성격도 아니고 제법 솔직한 편이다. 양왕처럼 혼나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삭히는 체질이 아니라, 이사람저사람 붙잡고 투덜대고 떠들고 화도내고 장난도 치면서 어떻게든 풀고 마는, 한마디로 시시덕 거리면서 푸는 유치하고 짜증스런 성격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습관이 굉장히 위험한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쥐도새도 모르게' 내 속을 편하게 방출하면서도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이나 꼬리 밟히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빨래를 널면서 중대장 욕을 하는데 사각지대에서 중대장이 튀어나온다거나, 보급관 욕을 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보급관이 손을 씻고 있었다거나, '아 샹 내가 뭔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포효하고 뒤를 돌아보니 관리관이 서 있었던, 그런 낯뜨거운 일들이 참으로 즐비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족족 걸릴 수가 있냐며 캐년이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 <투덜복왕 발각의 역사>, 2008)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알고보면 참 땀나는 일이다-_-; 

몇가지 일화 중 저 마지막 '아 샹 내가 뭔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 요 말 한번 잘못했다가 그날로 낙인 찍히고, 그가 시키는 온갖 막노동에 개처럼 투입되었던 모든 공로를 저 한마디 유출로 몽땅 날려먹는 것도 군대 내 이빨보안의 한계와 본인 성격상의 결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래도, 상상 이하의 간부들 아래에서 일하면서,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마저 그들의 무지몽매함을 욕할 자격도 없는거라면, 군생활 정말 너무 빡빡하지 않은가. 군생활 재미의 반이 간부 뒷담화인데! 

(착한 사람도 군대 가면 다 이렇게 된다. 그들의 폭언욕설에 파뭍혀 살면서도 '아 참 좋으신 분이야' 할 수는 없지, 암.. 봐라, 당신도 당신 상관 성대모사 하나쯤은 할 수 있지않은가!) 

관리관 특유의, 상대방을 앞에 두고 제 3자에게 상대방을 욕하는 스타일, 이를테면 내 앞에서 양왕에게 '저 새끼는 취사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지 밥 쳐먹는 것만 관심있어?' .. 요런 요사스런 행동을 여기서는 그나마 가장 근접한 단어인 '깐족' 으로 명명하려고 한다. 광의로는 깐족+이간질+폭언+욕설+비아냥 등 모든 인신공격과 의도적인 깎아내림이 결합한 단어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와신상담하며 잘 버텨내 지난달 20일에 무난히 휴가출발에 성공했었고, 격리되자마자 바로 분파까지 가는 바람에 유선보고 중에 한바탕 욕을 들어먹긴 했지만, 어쨌든 또 한번 탈출에 성공해 포차타고 분교대로 달려가는 기분은 정말 도레미파'쏠쏠' 했다. 심지어 분파인원 중에 신종플루 확진자가 나와 일주일 격리까지 덤으로 먹었다. 그 격리 때문에 정작 분파휴가는 못갔지만-_-.. 어쨌든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관리관으로부터의 기나긴 도피는 정말 꿀맛이었다.

복귀 후 다음날, 관리관의 상큼한 아침인사 

'넌 그렇게 부정적인 놈인데 왜 글을 잘쓰냐?' 

여기서 그의 투데이깐족테마를 캐치할 수 있다. 아, 오늘의 주제는 '글' 이구나-_-.. 

'너 책 쓰는게 꿈이랬지? 내 욕 엄청 써있겠다~ 내가 요즘 로또 맞는게 꿈인데, 로또 맞으면 그 돈으로 니 책 몽땅 사서 다 불사질러버릴거야.(화르르)' 

불타오르는 그의 눈빛에서 진심이 우러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건 뭐 초등학교 말싸움도 아니고. 하지만 글 쓰고 책 만드는건 내 평생의 소원이기 때문에, 소중한 이야기를 유치함으로 더럽히는 그의 행각에 바보같이 또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만다. 어차피 간부와 병사 간의 관계는 불평등해 아무 말도 못하고 표정만 굳을거면서. 

때마침 군담과 탄반이 튀김솥 수리한다고 오자 탄력받은 관리관, 아무도 주의깊게 듣고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도 끊임없이 그들과 후임들에게 내 욕을 해댔다. 듣기 거북한 나는 끝내 나가버리고, 따라나온 노왕에게 괜한 분풀이만 했다. 

'왓 더 독~ 씨를 발라버릴 베이베~~'
'니가 참아, 근데 대체 무슨 죄를 진거야?' 

한편 자신의 화려한 말발에 스스로 감동한 관리관은 신들린 듯이 취사장 내외에서 내 욕을 하기 시작하고-_- 귀를 깨끗히 팠는데도 끊임없이 귀는 간지럽고-_- 솔직히 난 지금까지도 그 앞에서 딱히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고! 굳이 화를 내겠다면 차라리 저번처럼 샤우팅하면서 칸막이 걷어차고 문에다 주먹질 할때처럼 하란 말이다. 

그의 되도않는 깐족거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도둑질도 해본놈이 잘한다고, 깐족거림도 하면 할수록 잘하는가 보다. 초창기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릴', '눈에 사시미를 쑤셔넣을' 귀여운(?) 폭언으로 시작했던 그의 미사여구는 날이갈수록 그 어휘와 활용이 넓고 깊어지고 있으니, 혹여 국어사전을 펴놓고 다양하고도 치명적인 공격력을 가진 어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양왕은 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이 말많은 사람이 앞에서 시도때도 없이 깐족대는데 어떻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냐는 말이다. 어쩌다 한번 내게 '아 정말 싫다' 고 한게 그의 표현의 전부였다. 양왕은 정녕 유비였을지도 모른다-_-.. 양형, 돌아와ㅠㅠ 나 혼자 지고 가기에 남은 59일은 너무 벅차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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