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금요일 새벽조 메뉴 가지무침 + 멸치볶음-_- 만드는 입장에서도, 먹는 입장에서도 전천후 최악의 조합. 제작의 용이성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멸볶+맛김 조합이나 오징어젓+맛김 조합 등을 선호한다.

게다가 하필 추가되는 메뉴가 '가지무침!!!!!' 일단 구토를 유발하는 가지를 무쳐야 하고, 간을 봐야 하니까 어쩔수 없이 먹어야만 하고ㅠ 삶았다가 꺼내서 물 빼고 간을 해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맛도 없고!! 더 큰 문제는 저번 아침 멸치 멸망 사건으로 인해 대대장이 멸치로 트집을 가능성이 높은 이 시점에서 하필 멸치볶음이 금요일이라니ㅠ

멸치는 전통적으로 새벽조 최강 때깔 메뉴 중 하나지만서도, 이번 대대장의 갈굼을 통해 캐난감 메뉴로 전락하고 말았다. 메뉴표를 살펴보며 새벽조 정말 잘못걸려도 한참 잘못걸렸다 싶었다.

우선 나의 책사 위제트와 가지를 삶을 것인지 볶을 것인지를 논의하고, 멸치는 잘있나 확인해 보려고 건조창고를 열었다. 근데.. 멸치가 없다??

건조창고를 전부 뒤지고 1종, 쌀창고까지 다 털어보았지만 사라진 멸치는 찾을 수가 없었다. 쓰지도 않는 국간용 왕멸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사태에 대해서 나는 신속한 추리를 시도했다. 역시..

범인은 짬엉클이다!!

그렇다면 어제 짬엉클에게 멸치를 제공한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아무리 왕멸치를 안쓴다고 짬아저씨에게 짬시키는 것이 통례라고는 하나, 누가 지리멸치를 확인도 안하고 준 것일까. 범인을 물색하기 위해 우리는 취사병들을 탐문취조하기 시작했다. 수사망은 이내 좁혀졌고, 그 인원은 분명 어제 짬엉클의 짬트럭에 짬통을 들어올린 3명 중에 한명일 것이었다. 처음에는 극구 부인하던 쟈스틴이 곧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면서 우리는 절망하기 시작했다.

쟈스틴이 순식간에 의기소침해져 주눅들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를 위로하면서 전화 연락을 해보고 멸치를 다시한번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정신을 차린 쟈스틴은 전화기로 달려가 이전에 받아두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지만 짬엉클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짬엉클이 짬을 수거하러 올 시각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해결방법은 요원했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세우며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 짬엉클과의 통화에 성공한 경우

 1) 멸치가 있다 : 어떻게든 설득해서 가져오게 한다
 2) 멸치가 없다 : 멸망

2. 짬엉클과 통화가 불가능한 경우

 1) 오후에 짬엉클이 오자마자 통사정을 한다
  ㄱ. 멸치가 있다 : 멸치 들고 한번만 다시 와주세요, 네?
  ㄴ. 멸치가 없다 : 멸망
 2) 짬엉클이 오지 않는다 : 멸망

3. 이모에게 멸치를 사달라고 한다

 1) 이모의 비용으로 조달
 2) 범인 쟈스틴의 비용으로 조달
 3) 취사병들의 금전거출로 조달

4. 관리관에게 고백한다

 1) 롸잇나우
 2) 저녁 즈음에
 3) 새벽조 당일 보고한다 : 대대장에게 멸망, 군수과장에게 한번 더 멸망, 군담에게 또 멸망, 보급관에게 또또 멸망, 관리관의 폭언욕설구타가혹행위 속에 정신분열 가능성 농후

여기서 짬엉클의 트럭을 탈취한다, 탈영해서 멸치를 사온다 따위의 의견은 논의의 심각성을 한참 벗어난 농담이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당시 우리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이미 정신분열 상태에 빠진 쟈스틴은 조리를 하다말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썩은 표정으로 짬통 앞에 넋놓고 앉아있기도 했다. 분대장인 나는 대책보다는 욕먹을 걱정이 앞서 먼산을 바라보며 욕먹기 예행연습을 머리속에서 그려보고 있었다.

오후 3시 = 짬엉클 영내 진입 1시간 전!!

우리는 짬엉클이 정시에 온다는 가정하에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서 멸치를 가지고 오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짬엉클이 이미 멸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건 우리의 비극을 예정하는 것이었기에 논외로 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잘라버린 구 짬엉클보다 이번 신 짬엉클이 비교적 온순하다는 것 정도?

'복병장님! 짬엉클 왔습니다!! 짬엉클, 짬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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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달려나가보니 짬엉클은 짬트럭을 몰고와 짬통 옆에 주차하고 있었다! 우리를 구원해줄 그의 위대한 짬트럭은 하남비에 자주 나오는 번지르르한 외제차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훌륭해 보였다!!

'저기 아저씨, 저희가 멸치를 잘못 드렸는데..'

우리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시는 짬엉클의 후덕함과 인자한 미소는 우리의 긴장된 마음을 다소 진정시켜 주었다.

'그러게 지리멸치가 있더라구~ 근데, 내가 어르신들 나눠줬어'

여기서 개 절망ㅠㅠ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희망과 광영의 멘트.

'아마 작업장에 한박스 정도는 남아있을거야, 그리고 내가 부탁해서 어르신들한테서 다시 받아올게'

우와아아앙 짬어르신!! 최고!!!

그의 무한한 서비스정신에 감동한 우리는 그에게 연신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이 와중에도 냉철한 우리의 이모는 그의 안심애프터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따냈다. 역시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그랬으니 연락이 될 턱이 없지ㅠ

짬엉클은 두어시간 뒤 결국 멸치 두상자를 전부 우리에게 돌려주기 위해 위풍당당히 짬트럭을 몰고 위병소로 다시 진입했고, 관리관과 군수관련 모든 간부들은 결국 이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내일 조리는 아무 이상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반나절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간 쟈스틴, 오늘 그가 했을 마음고생을 보듬어주고자 그의 등을 말없이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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